[항쟁의 역사 승리의 역사]2004년 탄핵저지 투쟁…역사를 써 나가는 것은 국민

박근혜에 대한 탄핵절차가 본격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는 이번이 두 번째다. 2004년에도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가 진행된 바 있다.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에서 신당인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야당들은 이를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한 것이라며 ‘국법질서 문란 행위’로 규정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국민적 바람을 타고 대통령으로 당선 된 ‘대학도 나오지 않은’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대한 기득권 정치인들의 반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2004년 3월 12일 임시 국회에서 157명의 의원이 발의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됐고, 재적 271명 중 193명이 찬성해 최종 가결됐다. 당시 소추위원인 김기춘 법제사법위원장이 헌법재판소에 소추안을 제출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5월 14일까지 직무가 정지됐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회의 탄핵소추안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발효일을 두고 ‘2004년 3월 12일 국회는 죽었다’고 분노했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를 ‘3·12쿠데타’로 규정하고 탄핵안 철회운동에 돌입했다. 약 2달간의 대통령 직무정지 기간 동안 매일 같이 ‘탄핵무효 민주수호’의 촛불이 전국 곳곳에서 타올랐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당일 1만2000여 명으로 거리로 나왔고, 20만명(경찰 추산 13만명)의 대규모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는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한 반면 제1당이던 한나라당은 121석(16대 133석)밖에 얻지 못했다. 제2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은 9석(16대 115석 / 분당 전)으로 정치적 생명력을 잃었고, 자유민주연합은 4석(16대 17석)을 얻는데 그쳤다.

결국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국민들이 끝까지 촛불을 들고, 총선에서 탄핵찬성 정치세력을 심판한 결과였다. 결국 국민들이 대통령을 지켜냈다. 헌재로서는 ‘국정공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탄핵을 부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부담이 적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2004년의 탄핵 국면은 지금과는 그 양상이 180도 달랐다. 2004년에는 국민들이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든 반면, 지금은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촛불을 들고 있다. 2004년에는 기득권 정치세력이 기득권에 대항했던 비주류 정치세력을 탄압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행보도 대비를 이룬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열을 올렸던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은 노무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헌정질서를 파괴한 박근혜 탄핵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번의 탄핵사태에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를 써 나가는 것은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민심의 향방은 대통령 자리마저 좌지우지 한다. 한껏 권력을 움켜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국회의원들도 국민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하루아침에 정치적 생명력을 잃을 수 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대한민국 정치와 역사를 바꿔낸다.

현재 민심의 방향은 명확하다. 그 민심에 역행하는 정치세력들은 촛불의 바다에 휩쓸려 떠내려 갈 것이다.

백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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