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사 방해꾼’ 미국,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60년 전 ‘대남 밀사’ 가로막은 CIA

미국이 한미워킹그룹을 앞세워 사사건건 남북관계를 방해하고 나선 오늘. 비유하자면 아직도 제 처지를 모르는 미국이 ‘한반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는 꼴사나운 모습인데, 아무래도 북한의 밀사를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린 60여 년 전을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 때와 지금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1961년 9월. 북한에서 휴전선을 넘어 ‘대남 밀사’ 황태성이 내려왔다. 한때 박정희와 남로당 활동을 함께 하고 ‘(박정희와는) 박정희의 친형인 박상희보다 가까웠다’는 설도 있는 황태성은 “남북통일의 방안과 타협을 모색하러 왔다. 박정희나 김종필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남측의 1, 2인자인 두 사람에게만 긴히 전할 말이 있다고 주장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빨갱이’ ‘민족주의자’라는 불신을 받고 있던 박정희 세력은 황태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상황을 살폈다.

다만 황태성은 고문실이 아니라 반도호텔에서 중앙정보부의 조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여러 설이 분분하지만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황태성을 밀사로 인정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김종필도 증언했듯 쿠데타 세력은 황태성이 밀사로 오기 전 영관급 장교와 민간인을 북한으로 보낸 바 있다. 1963년 7월2일 판결문을 봐도 황태성은 “남한에서 간 밀사에 대한 반찰(편지 답장을 보냄)”이라고 진술했다. 이러한 정황은 남북이 서로 밀사를 파견해 대화를 시도했음을 뒷받침해준다.

그런데 미국이 황태성의 존재를 눈치 챘다. 한미양해각서에 따라 대공 수사의 우선권을 가진 CIA의 지휘를 받는 미군 502군사정보단이 황태성을 끌고 갔다. 이 과정에서 미 중앙정보국(CIA) 또는 주한미군 방첩대(CIC)가 황태성을 심문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황태성의 이름이 언급된 미국외교기밀문서(FRUS·Foreign Relations of United States) 심문 기록 공개를 꺼리며 쉬쉬하고 있다.

이는 미국 스스로도 정보당국을 동원해 대남 밀사를 납치한 행위가 대외적으로 밝히기 꺼림칙한 치부임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미국의 목적은 두 가지로 파악된다. 미국의 정책과 반대되는 ‘빨갱이’로 의심되는 박정희의 약점을 쥐고, 원치 않는 남북관계 진전을 막기 위해 황태성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

미국은 황태성에 ‘박정희와 김종필과의 관계’를 캐물었을 테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는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대선을 앞둔 박정희에게 한 때는 ‘친형인 박상희보다 가까웠던’ 황태성은 눈엣가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을 고작 3일 앞둔 1963년 12월 14일, 육군고등검찰부는 ‘밀사 황태성’을 인천의 으슥한 산골짜기에서 총살했다. 자칫하면 미국의 눈 밖에 나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박정희 세력의 위기의식이 밀사를 제거하는 엄청난 만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순식간에 날려버린 황망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황태성은 ‘남북통일’과 관련된 획기적 내용이 담긴 북한 최고지도자(김일성 주석)의 전언을 가지고 왔을 수 있다. 박정희는 황태성을 통해 관동군 장교 출신이라는 친일·반민족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민족·통일의 ‘아군’이 될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여기에는 권력유지를 위해 몸을 잔뜩 사리던 박정희의 반민족적인 태도, 나아가서 냉전의 확대를 노리며 남북관계 진전을 마뜩찮아 하는 미국의 그림자가 짙게 어른거리고 있었다. 밀사 제거 이후, 박정희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미국의 입맛에 맞게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 통일운동을 철저히 탄압하고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하는 반통일 노선으로 내달렸다.

언제까지 미국의 뒷모습 쳐다만 볼 건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 당시 남북 정상의 모습 이미지 합성

그 뒤 햇수로 58년이 흘렀다.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미국의 횡포는 여전한 듯하지만 상황은 다소 바뀌었다. CIA의 겁박을 통해 노골적으로 남북관계를 억제하고 나선 과거의 미국이, 이제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형식적으로나마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남북 군사 분야 합의를 통해 남북 간 ‘실질적 종전’이 이뤄지고 난 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전화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며 격노했다는 보도가 전해진 바 있다. 보도내용을 종합하면 폼페이오를 비롯한 미국은 한국 정부로부터 사전에 남북 군사 분야 합의내용을 전해 받지 못한 점, 한·미 군사훈련이 제한된 점에 경악했다고 한다.

이후 두 달 뒤인 11월 20일, ‘한미 간 원활한 공조’를 내세운 한미워킹그룹이 부랴부랴 출범했다. 폼페이오는 “이것(워킹그룹)은 우리가 서로 다른 소리를 하지 않고, 서로 다른 쪽이 알지 못하거나 의견 표명 또는 생각을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지난날 한국 외교부는 폼페이오가 ‘화를 내지 않았다’며 해명했지만, 폼페이오 스스로의 입을 통해 미국의 불편한 심기와 한미워킹그룹의 의도가 만천하에 공개된 꼴이다.

이에 대한 진단은 분명하다. 한국이 북한(민족)과의 협력을 추구하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제2의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한국의 움직임을 억제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한미워킹그룹 설립 이후 개성공단 출입을 요구하는 기업인들의 방북신청은 모조리 불허됐다.

2차 북미정상회담 뒤 3월 6일,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통일부에 개성공단 시설 점검을 위한 제8차 방북 신청서를 냈다. 통일부는 “이번에는 한미워킹그룹에서 협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인들의 개성공단 출입에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결국 3월 22일 “일전에도 방북 승인 유보조치를 했다. 그때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한마디로 미국이 개성공단 출입을 반대하는 상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통일부는 같은 날인 3월 22일, 북측 인력이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자 당황해하며 “(북측의) 조속한 복귀를 기다리겠다”는 입장만 내놓을 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교류를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북측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미국의 눈치만을 살피는 형국, 이래서야 시민사회 각계가 ‘통일부는 반(反)통일부’라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구호를 다시 꺼내들어야 할 판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3월 19일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대북특사는 필요하지만 현재 움직임은 없다”며 “남북정상회담 준비는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총리의 발언을 무색케 하는 어안이 벙벙한 장면이 펼쳐졌다. 3월 31일, 한미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위해 워싱턴 D.C를 찾은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대북특사는) 우리 동맹국인 미국과도 먼저 조율해서 만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본다”고 했다. 국무총리조차 답하지 못한 사안을 미국과의 논의를 통해 결정지을 수 있다는 ‘일개 관료의 입’은 미국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한국 정부의 상황을 여러모로 암시하게 해준다.

박정희가 될 수 없는 문재인…남북관계로 미국 뚫어내야

박정희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밀사를 총살했던 과거와, 한반도 분단체제의 종착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오늘은 판이하게 다르다.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을 남발하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미국을 향한 비판여론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말을 북한에 전달할 뿐인 ‘메신저(전달자)’에서, 남북관계 진전으로 돌파구를 뚫어내는 ‘한반도의 직접 당사자’로 시급히 태세를 전환해야 한다. 자체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대북특사 논의를 단념하고 오로지 4.11 한미정상회담에 매달리는 정부의 모습은 그 자체로 판문점선언·9월 평양공동선언 정신 위반이다.

답답한 현 국면을 풀 열쇠는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을 명시한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이 쥐고 있다. 남북 정상의 상호신뢰가 두터워진 이제는 이전처럼 ‘밀사’가 아니라, 얼마든지 어느 때든 대북특사를 보낼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이처럼 남북이 지난한 분단의 세월을 뚫고 도출한 답안을 회피해서야 주권국가 체면이 도저히 서지 않는다.

2017년 5월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를 “촛불혁명으로 태어났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대북적대와 반민족·반민중으로 점철되어있던 이명박·박근혜, 그 조상격인 박정희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선언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9월 19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는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다.”

촛불과 겨레의 소망은 명확하다. 남북관계를 시시콜콜 간섭하며 ‘한반도의 주권’을 침해하는 미국을 물리치고 과감히 저 앞을 향해 큼직하게 꾸준히 전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와 온 겨레에 굳게 약속한 다짐을 이행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애초 벌써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이룬 문재인 대통령은, 대남 밀사 황태성을 죽여 입을 막았던 지난날의 박정희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미국이 질색하는 남북군사합의로 “실질적 종전”까지 이뤄냈음을 국민 앞에 감격어린 표정으로 밝히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선명하다.

우리는 한반도의 질서가 전쟁에서 평화와 통일로 전환되어가는 격동의 시대, 한복판에서 숨 쉬고 있다. 남측의 지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압박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며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후순위로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평화와 번영, 통일의 호흡’은 멀어져갈 뿐이다.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남북관계를 중심에 두고 미국의 변화를 추동한다면 분명히 타개책은 있다. 가장 먼저 우리 정부가 시급히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열쇠’를 단단히 꼭 쥘 결심을 다져야 한다. 남과 북이 함께 한반도의 주권과 평화를 되찾는 주역으로서 세계무대에 나선다면 이른 시일 내 ‘우리의 꿈’은 생생한 현실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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