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변 빅딜’도 못 받는 미국의 아둔함

“미국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

– 2월 27-28일 이틀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문 도출이 무산된 다음날(3월 1일) 자정을 조금 넘긴 0시 10분(현지시각) 멜리아 호텔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북한의 공식입

아무래도 최선희 부상의 말처럼 기회를 놓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으로 보인다.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꽉 쥐고 있는 것이 북한이라면 합의 무산으로 위기에 처한 것은 바로 미국이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연일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3월 1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위 위원장은 “지금은 평화협정 전 단계로, 북한이 핵시설의 50~80%를 차지하고 있는 영변 핵시설에 미국 전문가를 참여시켜 검증을 통해 영구적으로 폐쇄하겠다고 한 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제안”이라면서 “전반적인 경제 재재 해제와 교환하자고 한 것은 대단히 획기적인 제안”이라고 지적했다.

3월 7일 김동엽 경남대 교수(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는 <2차 북미정상회담 분석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미국에서 제기하고 있는 영변을 넘어선 우라늄농축시설이라든가 핵시설들은 과장되어 있고 악의적”이라면서 “(미국이) 마치 과거 이라크에 생화학무기 있다고 들어간 것처럼 북한을 악의 틀(프레임)로 놓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엽 교수는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남측 국방부의 실무자로서 남북 군사합의에 여러 차례 관여한 바 있고 지난해 3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1.5 트랙’(반관반민)대화에 참가했다.

김동엽 교수에 따르면 반관반민 대화 자리에서 최강일 북한 외무성 아메리카국 부국장(미국연구소 부소장)은 “핵은 포기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2차 북미정상회담 자리에서 미국 기자의 질문에 “(비핵화를) 하지 않을 거라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밝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시절 대북정책을 다뤘지만 좌절한 미국 내 오랜 경험자들도 ‘북한의 항복’을 요구하는 기존의 대북전략이 실현불가능한 패착임을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선제적 영변 해체, 단계·동시·병행적 행동을 밟지 않는 미국의 아둔함을 꼬집은 것이다.

3월 17일, 2005~2008년 당시 대북 협상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은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는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이라”(A deal for Trump: Take North Korea’s offer and build upon it)는 제목의 직설적인 논평을 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의 협상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락했어야 했다”고 했다. 이어 “영변은 북한의 유일한 플루토늄 생산시설이며, 플루토늄은 북한의 핵분열 물질 비축의 주요 부문”이라면서 “과거 북한이 핵 프로그램 보유 자체를 부정해 온 것을 감안할 때 영변 핵시설 해체는 중대한 발전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힐 전 차관보는 각각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는 ‘북한의 요구사항을 보다 세밀히 살펴볼 것’을, 미 정부 내 대북강경파들에게는 ‘서로 간의 다툼을 멈추고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그에 기반 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 수립’을 제안했다

3월 19일, 지난 2010년 영변 핵시설을 직접 본 시그프리트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 역시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dismantle)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 핵 전문가들의 참관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큰 제안(big deal)”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솝 우화> 중 ‘욕심 많은 개’를 주목해봄직 하다. ‘더 커 보이는 고기’(영변+@)를 포기하지 못하는 욕심 많은 개(미국)의 태도를 통해 치명적인 패착을 밟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드러난다. 아래에 ‘욕심 많은 개’의 내용을 소개한다.

“(욕심 많은 개가) 그 다음 집에 가는 길에 다리를 건넜는데 그 다리 밑에 다른 한 마리 개가 입에 고기를 물고 있었다. 욕심쟁이 개는 그 개의 고기가 더 크고 더 맛있어 보이자 뺏어먹으려고 컹컹 짖자 입에 물고 있던 고기가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북한의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인 ‘영변 핵시설 폐기’에 상응조치인 ‘제재 일부 해제’조차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향후 협상의 주도권을 완전히 놓친 꼴이 됐다.

위 우화의 또 다른 판본에서는 욕심 많은 개가 고기를 물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아예 익사했다. 즉 북한의 ‘통 큰 제안’을 받지 못해 막대한 손해를 본 것은 미국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는 이 사안을, 초강대국인 미국이 좌우한다는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화를 현실에 비춰 볼 때 ‘욕심 많은 미국’은 물에 비친 영변+@와 생화학무기를 보고 짖다가 영변까지 놓친 셈이다. 미국은 혹시라도 합의를 깨고 제네바합의와 북미 공동코뮤니케를 뭉갰던 옛 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을 필두로 중국, 러시아, 시리아,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미국에 대한 반발이 직접행동으로 현실화된 지금의 상황은 ‘미국이 놓지 못하는 어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은 ‘유일무이한 초강대국’을 으스대는 미국이 북한이 아닌, ‘아둔한 미국’이라는 내부의 적에 사로잡혀있는지도 모르겠다.

북한과 미국, 어느 쪽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지는 그리 머지않아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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