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결렬’ 미국의 입만 보는 ‘북맹’ 언론

근거 없이 북한 깎아내리는보도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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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북한 방송에서는 (북미회담이) 잘 된다고 얘기하고 있었으니까요.”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이 현장에는 조선중앙티비 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이 조선중앙티비는 우리나라 언론과 다르게 사실은 북한 공산당의 공식 대변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역시 모르고 있었다라고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

박성태 JTBC 기자

위 대화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예상을 벗어나 합의문 마련 없이 끝난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 현지에서 방송된 JTBC <뉴스룸>의 ‘코너 속 코너’ 비하인드뉴스의 발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손석희 JTBC 대표이사가 묻고 박성태 비하인드뉴스 담당기자가 답했다.

그런데 위의 길지 않은 대화를 통해 북한사회를 정말이지 너무나도 모르는 한국 언론의 ‘무지’와 전반적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반도의 평화번영통일을 대비하며 국민에게 길잡이가 되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은커녕, 북한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 가득한 생각을 보도로 가공해 내보내는 꼴이다. 이런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위 발언은 세간의 전망과 정반대로 ‘하노이선언’이 불발된 뒤 북한의 입장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장 눈에 띄는 치명적 오류는 “북한 공산당”이다. 북한에는 공산당이 없고 1949년 창당한 ‘조선노동당’이 당과 국가의 정책을 관장하고 있다. 꼭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들어가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 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현지에서 북한의 반응을 전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은 기자가 결코 저질러선 안 될 최악의 실수였다.

어떤 변명을 해도 북한사회에 대한 기본공부조차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벗을 길이 없다. 하지만 위 비하인드뉴스의 전체 내용은 3월 3일 오후 12시를 향해가는 현재, 유튜브에서도 편집 없이 그대로 유포되고 있다. JTBC가 이 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뿐만 아니다. ‘속보 경쟁’을 하지 않는 사회주의 체제의 보도 특성도 무시-간과됐다. 비하인드뉴스는 조선중앙티비가 북미회담 결렬 가능성이 높아진 오후 3시 9분에 “북미 양국 정상이 단독환담과 만찬을 함께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전했다고 지적했다. 박성태 기자가 “2시 52분부터 업무오찬이 취소됐고 서명식이 없을 것이란 소식이 소셜미디어에 나왔다. 이 곳에 조선중앙티비 기자들도 많이 와 있는데 이 내용을 본국에서는 알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자 손석희 대표이사도 긍정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 말이 맞을까.

사회주의 체제의 언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언론과는 역할이 크게 다르다. 자본주의 체제의 언론은 속보경쟁을 우선시하며 하나의 보도에도 각기 다른 추측성 보도를 쏟아내지만, 사회주의 체제의 언론은 속보 보다는 당과 합의된 내용을 토대로 일관된 하나의 보도를 전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위 두 사람의 대화는 아예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조선중앙티비는 전날 밤(27일) 만찬과 단독회담을 가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소식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어쩌면 자본주의식 언론질서에 익숙한 나머지, 북한의 보도 방식을 간과한 측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언론이라면 몰라도 북한과의 ‘인연’이 있는 JTBC는 절대로 이래서는 안됐다.

JTBC는 남북관계가 열린 지난해 7월, 한국 언론 중 유일하게 평양을 방문해 보도 및 제휴협력을 맺었던 방송사다. KBS, 연합뉴스 등이 ‘평양지국 개설’ 신청을 했는데 북측 민화협은 JTBC만 초청해 이를 합의했다. 또한 양측은 오보를 방지하기 위한 중재기구 ‘남북언론교류협의’ 설치도 논의했다. 이처럼 남북 언론교류의 상징성이 큰 JTBC, 그런데 이렇게 큰 대형오보를 내보낸 모습을 보고 북한에서는 도대체 뭐라고 할까.

손석희 대표이사는 2013년 9월 16일 <뉴스룸>의 전신인 <뉴스9>를 맡으며 각오를 전했다.

“70년 전에 위베르 뵈브메라는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이라는 말을 했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마음도 가벼워질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데 분단의 세월인 70년을 지나고 있는 오늘, 한국 언론은 여전히 잘못된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모습이다.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큼은 ‘진실’의 잣대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JTBC의 사례는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공상’과 ‘억측’이라는 색안경을 낀 한국 언론계 전반의 한계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관점으로 잠식된 보도

그에 비해 미국의 입장을 헤아려(?) 북한을 배격하는 언론의 보도행태는 두드러진다. 북한을 알지 못하는 ‘북맹’과 대미추종이 결합된 반북보도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강화할 의향이 있나. 보다 압박을 넣을 의향이 있나?”

-2월 28일,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회담의 결렬 배경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김정안 동아일보·채널A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

미국에 대북제재 추가를 요구-청원하는 듯한 한국 기자의 질문이다. 철 지난 ‘북한 붕괴론’에 안달이 난 풍경이다.

같은 민족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은 도중에 이 소름끼치는 질문을 끊고 “지금도 이미 대북제재가 강하기 때문에 이것을 더 강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더 좋은 관계를 이어가면서 내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그들도 그들의 관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2017년에는 “한반도에서 수천명이 죽어도 상관 없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북한의 상황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인식이 크게 변화했다. 이런 상황이니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SNS)에서는 “우리나라 기자 맞나.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나”라는 분노와 탄식의 반응이 절로 나온 것도 당연하다. 이렇듯 미국조차도 대북관점이 바뀌었는데 반북적 보수언론은 흘러간 반공주의 시절의 옛 노래를 외치며 냉전과 분단을 조장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을 불신한다”는 식의 발언을 서슴없이 언급하며 한반도의 평화번영통일을 가로막는 언론의 태도는 정도가 지나치다. “북한과 트럼프를 불신한다”며 공공연히 한반도 평화에 초를 치고 있다고 평가를 받는 미국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네오콘·군산복합체, 일본의 아베 정권을 대변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한반도의 평화번영통일, 그리고 민족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앞세우는 언론·기자였다면 위의 질문은 아예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용감히 질문을 던진 기자가 세간의 큰 화제가 되었다는 무책임한 후속보도를 냈다. 여론의 비판을 화제로 해석하다니 황당함을 넘어 놀랍기만 하다.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빠져있던 지난 날로 원상복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언론계 전반이 이런 상황이니 연신 비핵화 무장해제를 앞세우는 ‘미국의 편’을 들며, 미국의 시선에서 북한을 배격하는 보도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회담 뒤 지금까지 ‘북한VS미국의 진실 공방’이라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시다. 합의문이 무산된 배경에 대해 리용호 외무상-최선희 부상과 트럼프 대통령-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공방이 부각되고 있는 것. 미국 고위관계자의 입을 통해 ‘북한의 탓’이라는 식의 편향된 보도방식이 눈에 띈다.

그 대표주자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대북적대적 보수성향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언론 중 하나이며 이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미-북정상회담’이란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마치 북한과 미국을 함께 보도하는 경우 미국의 입장을 먼저 앞세워야한다는 방침이 녹아있는 듯하다. 그 점은 북미회담 결렬 이유로 ‘북한 책임론’을 제기한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3월 2일 <조선일보>는 영변 핵시설 폐기로 일부 유엔제재 해제를 원했다고 한 리용호 외무상의 말은 ‘거짓’이라는 취지의 대북 반박성 보도를 냈다. <북이 ‘민수 제재’라고 한 5건은… 석탄·철·석유 봉쇄하는 핵심 재제> <영변 카드로 재제 ‘99% 해제’ 노린 북>이란 두 꼭지의 기사다. 조선일보는 2016년 2017년까지 유엔제재 5개 해제를 주장한 리용호 외무상이 유엔제재 100%해제를 요구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회담을 깬 건 트럼프가 아니라 비핵화의 성의도 보이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한 북한이라는 논리다.

종합하자면 조선일보는 회담장에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고 밝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을 믿어서는 안 되며, 제재를 강화해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위험천만하고 철 지난 대북적대와 체제대결의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런데 분위기는 조선일보의 주장과는 사뭇 다르다. 양국의 첨예한 입장차로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었으니 양국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들만 한데, 오히려 3월 3일 한미 군 당국은 ‘북한 점령’을 뼈대로 한 한미 합동군사훈련 키리졸브-독수리훈련의 종료를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이 제기한 동시·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여 판을 깨지 않고 북한과의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기조를 밝힌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제기한 동시·단계적 해법이 한반도 평화번영통일의 초석을 놓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언론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회담 결렬누가 기뻐하고 누가 웃었나

“(2차 북미회담의 결렬을) 누가 기뻐했는가. 누가 웃었나. 누가 더 나쁘게 되길 원하는가. 결렬의 성과라면 바로 누가 한반도의 미래를 가로막는가 드러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민족자주의 정신이 빛나는 3.1독립운동 100주년인 2019년 3월 1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인 김어준 씨의 발언이다. 김어준 씨는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의 네오콘, 일본의 아베 정권 등 한반도의 평화를 번번이 가로막고 있는 세력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이 누구의 편을 드는지 잘 봐야한다고 성토했다.

한반도의 평화번영통일을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맞다면 언론은 적어도 최소한, 위 같은 기준선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은 앞서 언급한 ‘남북언론교류협의’조차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대표적으로 호치민 전 베트남 국가주석의 묘소를 찾은 김정은 위원장에 “환하게 웃지 않아 표정이 어둡다”는 언론인들이 화면 속에서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 아니, 베트남의 국부로 불리는 호치민 주석의 묘소를 찾았는데 그 자리에서 웃어야 한단 말인가.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언론이 그토록 강조하는 진실과 공정성이 결여된 비뚤어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우리”라는 기본인식조차 없는 언론계가 앞장서 왜곡된 대북인식을 한국사회에 공급하고 있는 꼴이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우월의식-편견을 당연시하며 미국의 입장을 강조해 전파하는 그들은 도대체 어느 땅의 어느 민족인가.

당초 언론은 ‘이번 회담을 엎은 미국이 합리적었나?’라는 의문을 제기했어야 한다. 당초 실무협상에서 논의됐던 영변핵시설 폐기를 넘어, 추가시설 해체를 요구하는 미국의 방식이야말로 지극히 불합리하지 않나. 실무협상에서 언급되지도 않은 ‘영변+알파’를 운운한 미국의 반평화-반통일 태도는 역력했다. 반면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대화로 풀어가겠다는 북한의 차분한 태도는 돋보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 2007년 10.4선언 때도 언론계의 반북-혐북적인 정서는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주통일”을 처음으로 명시한 2018년의 판문점선언-김정은 위원장의 서울답방을 명시한 평양공동선언으로 한반도 정세는 결정적 국면에 서 있다. 방해꾼임을 자인하지 않을 작정이라면 대북 우월의식, 대미 추종에 얽매여있을 것이 아니라 서둘러 마음 단단히 먹고 민족자주의 길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언론본부는 박근혜 정권 당시였던 2017년 3월 한 성명을 냈다. “수십 년 전에 맺은 한미군사동맹에 코가 꿰인 상태를 방치하지 말고, 외세의 분탕질을 막기 위한 자주적인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이는 민족이 풀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다.”

위 과제는 무척 주효하다. ‘통일이냐 반통일이냐’가 무르익는 분기점, 언론은 반북 반민족적인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한다. 그런 인식이 한반도의 앞날을 사사건건 가로막은 것은 아니었을지 골똘히 자성해야 한다. 민족과 우리의 자손을 위한 단 하나의 길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사색해 제대로 된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언론은 남북언론의 전면적 교류, 평양지국 개설에 앞서 스스로의 태도를 되물어야 한다. 끝까지 시대흐름에 훼방을 놓는 노릇이라면 통일궤도에서 이탈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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