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우리들이 ‘3.1운동’의 주역이라는 교훈

3.1100주년민중·민족 올곧게 조명한 이 영화 <말모이>

3.1독립운동은 우리 조상들이 일제에 맞서 식민지 조선 전역에서 전개한 전민중적 전민족적 항쟁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 10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펼친 시위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정가운데 한반도 그림과 이미지합성)

2019년은 3.1독립운동과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동시에 맞는 의미 있는 해다. 그래서일까. 지난해부터 남북 간 문화교류-정상회담 등 통일과 맞닿은 세기적인 명장면이 펼쳐졌고 “와 현실이 영화야!”라는 감탄사가 곳곳에서 터졌다. 오늘의 벅참이 한껏 다가온 데에는 우리 얼을 지키기 위해 굽히지 않고 투쟁에 떨쳐나선 평범한 조상들의 덕이 무척 크다. 그렇다면 후손인 우리는 그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좋을까.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지난번 뜻깊게 봤던 그 영화를 다시 떠올렸다. 일제강점기 남(조선)과 북(조선)을 무대로 삼은 <말모이>는 분단 이전, ‘우리겨레 전체’의 투쟁정신을 녹여낸 작품이라 할만하다.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8월 평창에서 열리는 ‘남북평화영화제’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분단을 넘어온 많은 동포들이 두런두런 풀밭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면 참 좋겠다는 멋진 상상력을 발휘하게 해준다.

말모이는 유일무이한 상업영화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우선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조선 민중을 조국해방-우리 말 지키기를 위해 활약하는 능동적 주체로서 전면에 앞세웠다는 점. 그동안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야 여럿 나왔지만 ‘까막눈 김판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한 적은 없었다.

이전의 영화들은 주로 “부당한 시대에 저항해야 한다, 일제의 마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행동하는 영웅을 주역으로 삼았다. 영웅과 함께 하는 인물은 주로 아나키즘(무정부주의) 등의 ‘고상한 사상’을 공유하는 몇몇 소수의 동지들이었다. (대표적으로 2017년 작 <박열>)

그래서 무엇보다 말모이 속 류정환 조선어학회 대표가 판수를 비롯한 평범한 이들을 향해 내민 “동지”라는 말과 손길이 참 뭉클했다. 영화 말미, 한데 모여 있던 극장에 일제 경찰이 들이닥치자 너나 할 것 없이 힘을 모아 우리말(얼)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모습들 하나하나가 눈에 밟힌다. 투쟁하는 민중을 이만큼 올곧은 시선으로 응시한 한국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지금까지 극장에 걸린 숱한 영화들은 주로 조선말과 일본어에 능통한 ‘무감각한 친일부역자 또는 지식인’이, 어느 순간 일제의 식민통치에 분노해 민족독립운동가로 탈바꿈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춰왔다. (대표적으로 2015년 작 <암살>)

둘째로 ‘남과 북의 온 민족이 함께’라는 민족정신을 뜻깊게 강조했다는 점. 그동안 개봉한 영화 속 배경은 철저히 ‘남녘’에만 조명됐다. 암살과 같은 기존 영화들은 경성(서울)의, 대한민국의 법통으로 헌법에 적시된 상하이 임시정부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쳤다. 가령 김일성 장군(훗날의 김일성 주석)의 주도로 북녘과 만주에서 항일무력투쟁이 펼쳐졌던 역사적 사실은 이상하리만치 철저하게 배제됐다.

반면 말모이는 남녘에만 머물던 기존의 방식을 허물고 만주, 북녘에서 이야기를 출발해 전진시킨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또다시 가까워진 2019년, 처음으로 일제강점기의 북녘을 앞세운 그 의도와 시대정신에 눈길이 절로 가게 되는 것이다.

민중과 민족의 지혜와 투쟁이라는 두 기둥으로 기승전결을 갖춘 영화적 분기점, 말모이가 펼쳐낸 풍경이 눈부신 이유다.

부당한 시대에 맞서 투쟁하는 민중

영화 <말모이>의 한 장면 영화 <말모이> 스틸 이미지

말모이 속 민중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풀어내야 할 숙제가 있다. “민중이란 누구인가?” 현대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민중은 정치권력과 가깝지 않은 일반인 전반(피지배계급)을 두루 이른다. 농민, 노동자, 청년학생, 자영업자(소상공인), 민중의 가치를 앞세우는 지식인이 바로 민중이다.

1930~40년대 식민지 조선을 다룬 말모이 속 민중도 오늘과 통한다. 주인공 판수는 동양극장의 안내원이자 홍보꾼이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영화제목이 선명한데 판수를 비롯한 민중의 질서가 일제 식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잠식됐다는 연출이다. 그러나 조선어학회와의 만남, ‘우리말(얼)을 지켜야한다’는 높은 의지에 맞게 민중의 역할은 극적으로 뒤바뀐다.

황해도, 평안도, 제주도, 경상도 등 조선8도 사방팔방에서 경성으로 올라온 판수의 친구들은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위한 사투리 수집에 지대한 몫을 발휘한다. 원래 조선어학회는 각 지역의 학교 선생들을 직접 찾거나 편지를 보내 사투리를 수집하려 했지만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불발된다. 방법이 없어보이던 상황에서 판수와 친구들이 멋있게 등장한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민중중심 이야기가 본격화되는 것.

여기에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잡지 ‘한글’을 읽은 독자들(청년학생을 비롯해 다양한 민중)이 학회에 자신이 쓰는 사투리를 편지로 담아 잔뜩 보내면서 사투리 수집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 평범한 사람들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지식인)이 한 데 어울려 투쟁에 나서는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뭉쳐 일어선 현대의 촛불항쟁이 포개지기도 하면서 벅찬 마음이 왈칵 쏟아진다.

민중은 지식인을 변화로 이끄는 존재이기도 하다. 판수의 동지 류정환 조선어학회 대표는 성장형 지식인이다. 처음에는 판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정환의 태도가 점차 바뀌어간다. 오해를 풀고 판수의 단칸방 마루에 앉아 정환은 말한다. “그거 아세요? 민들레는 문 둘레에 많이 피어서 민들레라고 부른대요.” 정환의 말투와 표정을 주목해야 한다. 그 자체로 민중을 상징하는 민들레와 판수를 번갈아 조명하는 카메라, 정환이 판수에게 감화되어가는 풍경에서 민중 중심주의가 두드러진다.

이처럼 영화는 어디에나 있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중요한 역할을 해내는 민중의 모습을 아낌없이 긍정적-능동적으로 표출해낸다. 부속품으로써의 민중이 아닌, 주체로서의 민중이 일제강점기를 자주독립으로 이끄는 방식을 생동감 있게 강조한다.

부당한 시대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민중은 모두 시대의 주인이다. 해방 뒤 정환의 글씨로 “김판수 동지께 드립니다”가 적힌 완성된 조선말 큰사전을 비추는 풍경은 분명 우리 마음에 그리 전하고 있다.

실제 역사의 주인도 분명 민중이었다. 당장 3.1운동을 보면 민족대표 33인이 일제 검경에 붙들려간 뒤에야 본격적인 싸움이 펼쳐졌다. 조선 전역에서 전민중적 결사(決死·죽음을 무릅쓴)항쟁의 봉화가 거세게 불타올라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이다.

길거리의 민중이 굳센 투쟁과 숭고한 희생으로 우리말(얼)을 고수해냈다는 점에서 영화 속 풍경과 3.1운동의 현실은 정확히 하나로 맞물려있다.

통일의 시대를 맞아 대활약하는 민족

 

 

한반도기 ⓒ인터넷

해방 이전 ‘통일된 민족’의 모습은 또 어떻게 찬란히 빛났는가. 이제 민족에 관해 얘기해보자. 1933년 북만주 산기슭에서 조선말 큰사전 자료를 소중히 품에 안고 일제 관동군에 급박하게 뒤쫓기는 정환. 총을 맞으면서도 “동지들의 뜻을 모아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장면을 주시하자.

실제 역사를 살피면 위 장면에 담긴 남다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만주 산기슭에서 항일무력투쟁을 벌인 김일성 장군을 비롯한 북녘의 독립운동가들, 정환의 실제인물로 추정되는 조선어학회에서 대활약하다 월북해 한국 역사가 ‘봉인’해 온 고루 리극로 선생 등이 함께 겹쳐 보이는 것이다.

미군정과 한국전쟁 뒤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수구적폐세력의 ‘빨갱이-종북 몰이’ 탓에 70여 년 동안이나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격투쟁, 리극로 선생에 대한 평가를 쉬쉬해온 분단한국사회에 일정한 균열을 냈다고 박수를 보낼만 하다.

이 뿐만 아니다. 정환이 관동군의 마수에서 벗어나 다다른 두 번째 장소는 황해도다. 황해도의 사투리가 들려오고 정환은 황해도 사투리가 담긴 종이뭉치를 직접 건네받아 경성행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남(조선)과 북(조선)이 일제의 삼엄한 감시망을 벗어나 왕래하며 조선어 큰사전을 만들어가는 장면에서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통쾌함이 있다.

지난해 강릉, 서울과 평양, 백두산에서 실제로 펼쳐진 명장면과 비교하며 곱씹어보자.

삼지연관현악단을 태운 만경봉92호가 동해 묵호항으로 들어왔을 때,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고속열차 KTX를 타고 곧이어 서울로 향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비행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에서 내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열렬히 환영하는 평양시민들을 마주했을 때, 백두산에 올라 두 정상이 번쩍 손을 치켜들었을 때…

가장 최근 2월 12일부터 13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 참가자들이 경복궁 주차장에서 군사분계선 넘어 금강산으로 넘어가 북녘 동포들과 깊은 밤까지 밀린 대화를 주고받은 순간도 있다. 그러나 감동과 환희 뒤편에는 “아직도 이렇게나 남북 공조가 제약받고 있구나”라는 답답함도 자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만큼은 일제강점기보다 못한 2019년의 민족분단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일일이 ‘미국의 압박과 견제’를 따져가며 통일의 손익분기점을 고려할 이유가 없다. 그럴 시간에 2차 북미정상회담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으로 막이 오를 ‘평화번영통일의 한반도’라는 세기적 명화를 모두가 합심해서 제대로 연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는 남북 간 분단된 3.1운동도 100주년을 맞아 통일 원년으로 힘껏 나아가야 한다. “우리 민족은 원래 하나다. 조선8도의 겨레가 함께 조선말 큰사전을 완성해냈듯 이 기개 하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말모이와 3.1운동의 주역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제시하는 강렬한 민족정신이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함박웃음 띠고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마주한 평범한 이들 모두(8천만 민중과 민족)가 앞에서 ‘이영차’ 끌어주고 뒤에서 ‘으쌰으쌰’ 밀어주며 거침없이 진보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3.1운동과 말모이의 중심주제가 이야깃거리로 오가는 명장면을 꼭 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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