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분단체제 청산 나선 통일주역 ‘자이니치’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민족사적으로 뜻깊은 일들이 가득한 올해 2018년을 그 누구보다 기쁘게 반긴 사람들. 우리민족의 옛 국호 조선을 삶 속에서 새기고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의 의미 있는 활동이 유독 많았다.

객관적인 상황은 벅차고 힘들다. 동포들은 지난 2013년부터 현재까지 조선(고급)학교의 재정지원을 끊고 있는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 ‘조선학교 무상화 보장’을 촉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왔다. 그 결과 아이치(愛知), 토쿄(東京) 지방재판소(지방법원) 등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오사카(大阪) 지방재판소에서 1심 전면승소라는 쾌거도 있었지만 아베 정권과 결탁한 사법부는 이마저도 2심에서 뒤집어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상황의 악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일본 권력의 정점이 조장하는 혐한·혐조선(북한) 정책과 정서 속에서 조선적을 유지하는 동포들은, 일본 정부가 관여하는 통계웹사이트 e-stat에 따르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민족차별정책이 작동된 2012년 기준 4만617명에서 2017년 기준 3만589명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동포들은 현실을 탓하며 주저하지 앉는다. 조국통일을 바라며 곳곳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는 주역들이 있다.

조선학교 학생들의 외부활동, 동포 학자와 일본 학자 간 대담, 팟캐스트에 출연한 조선대학교 교수의 통일 전망을 차례로 소개하며 새 시대 통일주역으로 우뚝 설 자이니치의 목소리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다.

*자이니치(在日재일)는 재일동포사회와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을 이르는 표현입니다. 재일조선인 또는 재일코리안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드린 표현은 동포사회에서 함께 쓰이는 표현들입니다. 글에서 “큰따옴표”로 인용한 부분은 모두 일본어 원문 또는 발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외부활동 : ‘이제는 통일시대’ 연말-연초 동포학생들의 목소리

2018년 12월 4일부터 9일까지 제47회 재일본조선학생 미술전람회가 치바(千葉)시 미술관 시민갤러리에서 열린다. 행사 취지에는 ‘더욱 넓게 펼쳐져라! 아이들의 세계 일본, 남북코리아, 아시아를 향해!’라고 소개되어 있다. 앞으로 통일조국의 미래를 이끌 동포아이들이 그림으로 덧그린 조국통일의 앞날이다.

전시회의 부제는 <우리학교와 치바의 친구들>이며 올해의 테마는 ‘손을 잇자’다. 이 행사는 재작년인 2016년까지만 해도 치바시외국인학교지역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치바시의 재정지원을 받아 진행됐지만 ‘위안부’와 관련된 작품이 걸렸다는 이유로 보조금 지급이 끊겼다. 조선학교를 차별하는 아베 정권의 입김이 확산되면서 치바시를 비롯한 일본의 많은 지자체는 조선학교와 관련된 재정지원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이번에 열리고 있는 전시회는 일본학교 5곳을 비롯해 아시아 9개국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린 작품이 전시되는 등 성황이다. ⓒ 김일우(金日宇) 페이스북 캡쳐

토쿄중고급조선학교 교사인 최성규 씨는 <조선신보>에서 ‘학미(학생미술전람회)의 세계2 어른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세계’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번 출품작들이 기존 작품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사진의 묘사력 같은 일반적인 평가기준을 걷어내면 전람회와 동포아이들의 그림이 완전히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그 기준을 일단 옆으로 치우고 새롭게 아이들의 작품과 새롭게 마주하면, 이런저런 울타리를 넘어 모든 작품에 아무런 전제조건을 붙이지 않고 새롭게 평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미술전이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획기적인 작품이다.”

위의 해설은 북한을 적대적으로 마주하는 일본사회를 향한 직접호소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들이 언론을 통해 재일동포와 민족교육에 ‘북한과 가까워 불순하다’ ‘북한식 교육을 믿을 수 없다’며 붙여대는 꼬리표(편견)를 걷어내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재일동포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영화 <귀향>에서 주인공 정민을 연기한 자이니치 4세 강하나도 2019년 연초 1월 11일-12일 히가시오사카시 아라모토인권문화센터에서 1인연극 ‘치마저고리’로 일본에서 또다시 무대에 선다. 재일동포사회에서 치마저고리는 민족의 얼이자 자존심이요, 연이은 차별과 억압에도 굳세게 정체성을 유지하고 말리라는 상징 그 자체다. 인권문화센터에서 1인연극이라니, 강하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서는 걸까?

‘치마저고리’가 상영되는 날짜와 장소가 소개되어 있는 홍보 포스터. 사진 속 인물이 무대에 서는 주인공 강하나다. ⓒ 극단 달오름 공식 페이스북

강하나가 전하는 말이다. “저의 이름은 강하나입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고교 3년생. 우리들은 교복이 두 벌 있습니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치마저고리 한 벌과 서구식 정장을 본뜬 일본식 교복을 번갈아 입는다. 1945년 해방 직후 일본 곳곳에서 설립된 국어강습소에서 비롯된 ‘민족의 얼 지키기 행동’을 현재도 각 지역의 조선학교(초급,중급,고급)학생들과 토쿄 소재 조선대학교 학생들도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에게서 들은 옛날 진짜로 있었던 사건이나 근처에서 사는 재일코리안 할머니의 이야기 등 치마저고리와 얽힌 에피소드를 18세 소녀가 전하는 작은, 작은 1인연극.”

-페이스북에 소개된 ‘치마저고리’ 내용 설명 중에서

‘치마저고리’를 준비하는 극단 달오름이 그동안 무대에서 다뤄온 주요주제는 재일코리안의 정신적 뿌리, 우리민족의 전통문화 알리기 등이다. 동포연기자들은 무대 위에서 조선어(우리말)와 일본어로 번갈아 대화하며 일본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의 현실을 사실 그대로 전달하고자 힘쓰고 있다. 무대를 찾는 가족친지들에게도, 한국의 남측 동포들에게도 정규교육과정에서에서 재일동포의 역사를 배우지 않는 일본인들에게도.

대담 : 북미정상회담이 쏘아올린 식민주의·분단체제 청산의 불꽃

이번에는 동포 학자의 활동을 눈여겨보자. 11월 21일 자이니치 2세 서경식 토쿄경제대 교수의 대담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메이지유신 150년과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맞은 2018년 올해는 세계적인 반동적 분위기의 청산을 위한 “교차점”이라고 서 교수는 강조한다.

대담자로 나선 서경식 교수는 조(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올해의 국면이 ‘청산의 기회’라고 주장한다. 지금껏 청산되지 못한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150년 동안의 역사, 류큐, 홋카이도. 타이완. 조선, 중국대륙일부 식민화, 결국에는 남북분단까지 이어진 일제의 잔재를 말끔히 걷어낼 때가 왔다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일제를 비롯한 세계 제국주의와 반동주의·식민주의 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이라는 평가는 단연 돋보인다.

서 교수에 따르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큰 프로세스(과정)의 일부”다.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한창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질서가 청산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북미정상회담과, ‘미군기지 반대’를 선명히 건 반미 진영이 대승한 10월 1일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는 하나로 이어져있다. 서 교수의 직접언급은 없었지만 4.27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도 기존의 질서가 무너져가는 과정이다.

일본인 학자가 동포 학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장면도 퍽 인상 깊다. “대미종속이 전후(일본)의 국체(國體·국가 형태)다.” 서 교수와 함께 대담을 나눈 타카하시 테츠야(高橋哲哉) 토쿄대 교수의 진단이다.

타카하시 교수는 미군정을 이끈 맥아더와 일제의 최고군통수권자 쇼와(昭和)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결합으로 미일동맹이 탄생했고 그 질서가 굳어져 1945년 이후 일본의 주류로 굳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천황제와 미일동맹이란 것이 밀접하게 관련된 전후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일본과 미국의 책임을 함께 따져 묻고 철저히 청산해야 일본사회가 근본부터 바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조선(북한), 한국, 중국, 대만, 아시아의 여러 나라. 오키나와 타자와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정말 위험한 길로 일본은 나아가고 있다.”

-2018년 10월 2일, 책임에 대해서 일본을 묻는 20년의 대화 「責任について 日本を問う20年の対話」 출판기념회에서 서경식 교수의 발언.

서 교수는 청산 과정에서 “재일조선인 등 마이너리티(소수자)가 아픔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며 “일본인 다수가 자각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대담에서는 타카하시 교수를 비롯해 오키나와 등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책의 내용에 공감을 표하며 질문을 던졌다.

일본은 과연 자각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에 해답을 쥐고 있는 것은 일본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있는 재일동포일지도 모른다. 올해 들어 시시각각 긍정적으로 진보해 가는 우리민족의 정세 속, 일상 속에서 분단을 넘나들어 왔던 재일동포들의 목소리는 귀중한 조언이 될 수 있다. 통일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선 자이니치가 주목받을 그날을 기대해봄직 하다.

팟캐스트 : “자이니치가 통일시대의 주역 될 때 왔다”

“조대생(조선대학교 학생)은 모두 모여서 수업 관두고 대함성을 질렀어요. 지금 학생들은 90년대생이죠.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조선반도의 분단은 치열했고 무엇보다도 철들었을 때에는 납치문제가 있어서 본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경험밖에 없었어요. 그랬는데 그런 장면(4.27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남측·북측 구역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을 때)을 보고 학생들은 순수하게 기뻐했어요.”

“재일동포들 중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나와 줬으면 좋겠다’ 했는데 정말로 그런 시대가 왔다.”

-인터넷방송 Waves U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자이니치심야호르몬’ 제5회 게스트: 조선대학교 준교수 리병휘 『ざいにち深夜ホルモン』第5回 朝鮮大学校 准教授 李柄輝 중에서 리병휘 교수의 말.

‘그런 장면, 그런 시대’ 재일동포 민족교육의 최고봉, 토쿄 소재 조선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조선근현대사를 가르치는 리병휘 조선대학교 교수가 판문점선언을 평가하며 무척 기쁘게 말했다. 리 교수는 판문점선언을 기점으로 일본 방송에 활발하게 출연해 왜곡된 북한사회, 북미대결의 진상을 알리는 활동에 나서고 있다.

교육현장에서 동포학생들에게 조선현대사를 가르치는 연구자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라 더욱 뜻깊다. “분단을 전제로 하지 않는 역사관”을 강조하며 일본사회에서의 차별과 억압을 뚫어내고 통일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설 자이니치의 미래를 그리는 리병휘 교수, 그 자신감의 근거를 함께 살펴보자.

리 교수는 ‘조선’은 “일제 36년 이후 (하나의) 국민국가를 만들려 했지만 남북의 분단을 전제로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그리려 한다면 역시 분단을 전제로 하지 않는 총체적 조선의 역사가 무척 중요”하며 “이건 분단된 남북보다도 오히려 자이니치, 우리 조선대학교 현대사교육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일하고 나서야 겨우 시작”이라는 리 교수의 인식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남과 북의 역사는 1945년 이전까지는 하나였지만 분단됐고 “조선 국민국가는 미완성됐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이니치는 남과 북 사이에서 갈등과 압박을 겪었지만, 이런 경험은 앞으로 펼쳐질 통일시대에서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리 교수의 말처럼 통일로 나아가는 국면에서 자이니치의 역할은 분단의 피해자에서 통일의 주역으로 격상할 가능성이 높다. 리 교수가 던진 또 다른 질문 “어째서 통일이 필요한가” 약간 길지만 전문을 인용해 본다.

“북은 명확합니다. 분단으로 잃어버린 게 많아요. 평양의 학생들과 졸업 후 뭐할 건지 얘기해보면 역시 그들도 장래에 고민이 있습니다. ‘나는 가수가 되고 싶어, 아니 난 군대에 가야돼’ (등의) 고민이 있지만 미국이 있으니까 (꿈을 접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유명한 한류스타, 스포츠맨이라도. 소중한 시기를 군에서 보내야 합니다. 어느 나라에도 군은 있지만 남북만큼 이렇게 (청춘이) 허비되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남북이 같은 동족끼리 맞서는 가운데 경제와 문명이 군 속에서 모든 것이 허비된다. 인민·국민끼리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절실합니다). 여기에 통일의 가장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일 이후는 어떨까. 리 교수가 그리는 통일조국의 미래상은 ‘시장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사회주의를 유지해 부의 공평한 재분배가 잘 되는 부국’이다. 북한의 변혁을 발판삼아 기존의 자본주의 선진국과는 다른 독자적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취임하고 사회주의는 반드시 지키지만, 공산주의란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됐어요. 조선에서. 사회주의의 이념은 살리면서도 실질적으로 사회주의가 잘 기능해 국민들이 풍족해지도록 하는 궁리가 이미 이뤄지고 있고 해 나가겠죠. 남북경제를 균형 발전시켜 나간다는 것. 남북이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면서 국제적 잠재력으로 살려간다. 더욱이 조선(한국)전쟁이 끝나면 주변국들과의 경제교류가 가능하다. 그런 의미로 잠재력이 무척 큽니다.”

“제가 떠올리는 건 수준 높은 복지국가입니다. 시장원리는 어느 정도 활용하지만 이것이 사람들의 평등을 부숴버리거나 또는 사람들 간의 착취가 용인되는 것 까진 가지 않습니다. 시장을 활용하면서도 어느 정도 컨트롤한다. 그리고 국가의 기능을 잘 활용하면서 부의 재분배기능을 제대로 완수해 간다.”

지난한 분단의 세월을 헤쳐 온 동포들은 담대한 소망을 품고 통일의 주역임을 당당히 선언하고 있다. 올해 온 민족이 함께 쏘아올린 통일, 그 시작의 불꽃은 머잖아 맹렬히 타올라 우리민족의 터전을 환하게 비출 것이다. 역사를 알고 통일을 향해 힘껏 투쟁하는 우리 민족에게는 찬란한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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