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70년 역사 철폐’로 통일시대 앞당기자

북한과의 상호교류를 차단하는 냉전·분단시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이 제정 된지 오늘로 꼭 70년을 맞았다. 분단을 조장하는 국가보안법의 망령은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맞은 올해에도 우리사회를 어김없이 위협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는 12월 1일 열리는 민중대회가 제시한 10대 과제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5년 민중총궐기 이후 3년 만에 촛불혁명의 여망을 담아 열린 민중대회의 중심화두 중 하나인 것이다. 국민은 국가보안법 청산 약속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고 뒷걸음질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빠르게 속도내기’를 주문하고 있다.

영화 <1987>로 되돌아보는 국가보안법의 끔찍함

2017년 개봉해 한국인들의 마음을 적신 영화 <1987>의 주인공 대학교 신입생 연희의 물음. “데모하러 가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렇다.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다. 적어도 촛불혁명으로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 있던 ‘유신의 딸’ 박근혜는 물러났잖은가.

현대사학자 한홍구가 2012년 겨울 박근혜의 당선을 지켜보며 절망적으로 표현한 ‘신유신의 밤’이 민중권력에 의해 전복되는 짜릿함은 실로 엄청났다. 물론 과연 근본적으로 세상이 바뀔 것인가라는 거대한 물음이 남아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유신을 맹렬히 작동시키던 국가보안법은 아직 엄존하고 있다.

수구적폐세력은 6.29선언 이후 노태우 당선을 거쳐 살아남았으며 이명박근혜정권을 등에 업고 활짝 기지개를 폈다. 대북심리전이라는 기가 차는 구실을 들이대며 거침없는 여론조작을 벌인 이명박 정부. 그 아래의 국가정보원(국정원)과 사이버군사령부의 거침없는 지원을 밑돌 삼아 박근혜가 당선됐다. 대통령을 도둑맞은 나라의 국민들은 촛불혁명 이전까지 종북몰이, 간첩 조작, 정당 해산이라는 재차 소환된 박정희 유신의 겁박에 서로를 의심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껍데기를 간신히 뒤집어썼을지언정 권력은 국민이 아닌 수구적폐세력들이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었다. 아버지인 박정희가 국가보안법을 휘두른 만큼 그런 박정희의 일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박근혜도 마찬가지 행보를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지만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간첩조작, 댓글조작, 종북몰이나 일삼던 국정원은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은 자체 개혁위원회를 꾸렸다.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한편 ‘국내 파트’를 없애겠다는 자체혁신안(?)을 내놨다. 그런데 이 조치는 매우 부족하다. 1987년, 아니 거스르면 1960년대부터 넘실거린 참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민중의 꿈을 실현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미진한 처사다.

다시 정권이 수구적폐세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떠올려보자. 국정원, 또 국정원의 조작놀음을 뒷받침하며 민중에게 이른바 불순분자, 이적사범이라는 소름끼치는 꼬리표를 달아대는 국가보안법의 위력은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영화 <1987> 속의 삭막하게 끔찍한 면면이 나온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에 못 이겨 터져 나온 신음과 피고름은 여전히 잊힐 길 없다.

뒤끝 없는 적폐청산에 성공하려면 국가보안법 청산이 필수적이다. 민주주의를 검열로 옥죄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밑바탕 삼지 않으면 적폐세력은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고 고개를 치켜드려 할 것이다. 1994년 당시의 문재인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드높이며 열성적으로 전국순회 변론에 나섰다. 2017년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며 7조 항목(찬양·고무 등)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7과 2018을 넘어 새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라도 이제 반드시 국가보안법은 과거 저 멀리로 청산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1987의 연희와 새 시대의 우리가 함께 손 맞잡고 지향해야 할 시대적 과제인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강제해산시킨 통합진보당

그러나 지난 8월 15일 고대하던 ‘국가보안법 최대의 피해자’ 양심수 사면은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입에 올렸던 국정원 폐지는커녕 국정원 개혁마저 후퇴시키고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는 고사하고 법안 개정조차 감감 무소식이다.

자유한국당 등 분단적폐세력이 틈만 나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사상의 자유를 좀먹는 종북공세가 바로 국가보안법에 근거하고 있다. 2014년 12월 18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사건을 통해 국가보안법에 뿌리를 둔 공안기관의 탄압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말살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권과 유착되어 구체적 증거도 제시하지 않고 추측과 단정으로 통합진보당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2012년 대선 TV토론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곤경에 처하게 몰아붙이자 박근혜 정권은 집요하게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에 관여했다.

당시 헌재의 진보당 해산결정은 박근혜 정권과 밀접한 조율 속에서 이뤄졌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2014년 10월 4일 수석비서관회의 내용에 김기춘 실장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長’(장)이라는 글씨와 함께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당시 김기춘은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여부를 두고 헌재 재판관들 간에 이견이 있다는 사실까지 상세히 언급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0월 17일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박한철 헌재소장은 국회의원들에게 진보당 해산 심판 선고를 ‘올해 안에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당시 이석기 의원에 대한 대법원 선고도 나오기 전이었던지라 박한철 소장의 발언은 상당히 논란이 됐다. 실제로 진보당의 해산 이후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는 무죄가 선고됐다. 결과적으로 내란음모는 무죄인데 진보당은 해산되어 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헌재는 “헌재소장을 비롯하여 9명의 재판관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모든 사건들에 있어서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외부와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3권 분립까지 무너진 채 헌법재판소의 평의 내용이 청와대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헌재는 통합진보당이 내세웠던 ‘진보적 민주주의’의 최종 목표가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이라고 단정했다. 진보당이 내세웠던 ‘진보적 민주주의’의 적법한 의미를 모두 부정하고 몇 몇 개별 당원들의 행적을 통해 정당의 이념을 왜곡 해석했다.

헌재는 진보당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지녔는지를 전혀 입증하지 않았다. 헌재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았으며 한 마디로 말해 ‘이석기 의원 등이 얼마나 위험한가’란 질문에 끝까지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재판관들은 보충의견에서 “아주 작은 싹을 보고도 사태의 흐름을 알고, 실마리를 보고, 그 결과를 알아야 한다(見微以知萌 見端以知末)”는 고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언제부터 ‘관심법’을 도입했던 것인가.

헌재는 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면서 규정에도 없는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 5명의 의원직을 지역구, 비례대표 가리지 않고 박탈했다. 이는 헌재의 명백한 월권행위다. 헌법, 헌법재판소법, 정당법에는 정당해산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당 해산 결정시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률에 입각해 판결을 해야 하는 법치주의 원리에 위배된다.

한낱 하위법률일 뿐인 ‘분단적폐의 흉기’ 국가보안법이 민주주의를 제약하는 이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국가보안법 철폐와 국정원 해체가 답

앞서 살펴봤듯이 지난 수구정권은 국가보안법을 활용해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국민을 마구잡이로 찍어 눌렀다. 통일의 상대인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논리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종북 또는 빨갱이라는 낙인에 찍혀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특히 국가보안법의 7조 고무 찬양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이적행위로 몰아 탄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북측이 선물한 송이버섯에 답례하기 위해 청와대가 준비한 귤 200톤에 대해 “북한을 이롭게 했다”고 억지 부린 자유한국당을 모두가 떠올릴 것이다. 이 때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기준이 매우 애매해서 국제인권위원회에서는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해 폐기권고가 내려진 상황이다.

오죽하면 국가보안법은 그 법이 만들어지던 1948년에도 한시적 특별법의 형태로 만들어진 악법이었다. 초보적 민주주의는커녕 민간인에 대한 학살만행이 횡행하던 1948년에도 한시적 특별법이란 딱지를 안고 제정되었던 국가보안법이 촛불혁명 뒤에도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국가보안법이 수십년째 맹위를 떨친 것은 한국사회의 암적 존재이며 헬조선을 야기한 장본인인 국정원이 국가보안법에 기대어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온갖 적폐활동에 앞장서서 적폐의 총본산으로 활동하였던 기관이었다. 2015년 2월 9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대통령 선거에 부정하게 개입된 혐의로 징역3년형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 알바인 십알단(십자군 알바단)을 운영하였음은 이미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은 2016년 3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 국정원이 지목하는 인물의 개인정보, 금융정보, 감청을 일상적으로 가능케 했다. 국정원은 2016년 4월에는 12명의 북한식당 여종업원들을 강제로 입국시키는데 관여해 당시 4.13 총선에서 색깔론을 제기하려 시도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보안법에 희생당한 <1987>의 민중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의 억울함을 전면 재검토해 하루빨리 행동에 나서야 한다.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으로 분단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국가단체의 수괴’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연내 서울답방은 분단체제에 결정적 종지부를 찍는 눈부신 역사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호 씨의 사례는 황당함을 넘어 어이없음을 자아낸다. 김 씨는 통일부의 승인 아래 북한 IT기술자들과 공식적인 경제협력 사업을 벌여왔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양측 판문점 구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킨 역사가 어디 가기라도 했단 말인가.

김 씨의 변호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는 “이런 시기에 피고인들이 이렇게 구속돼서 이런 재판을 해야 하는지 비참하지만, 이 기회에 국가보안법에 대해 지금 현실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해석, 헌재판단까지 받는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한국사회 전반의 마녀사냥이 자행될 수 있는 근원인 국정원의 완전 폐지와 국가보안법의 완전 철폐에 우리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분단적폐의 방해공작을 시급히 걷어치워야 한다.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웅장하게 떠오르는 통일시대의 출발점이 바로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청산이다. 문재인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국민의 목소리를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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