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 해체해야 할 역사1 ‘유엔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1. 유엔사, 엄청난 ‘국제사기’의 탄생

“누가 정말 국제사회를 속이고 사기를 치며,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는가. 유엔사라는 이름에 속지 말아야 한다. 유엔사는 실제로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국이 관할하는 군사체제다. 아직도 미국은 분단된 한국에서 자신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한다. 유엔사는 철도사업 재개를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실제적인 조치를 막았다”
-9월 17일, 미국이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바실리 네벤쟈의 유앤주재 러시아대사의 말

러시아는 어째서 ‘미국이 국제사회에 사기치고 있다’고 작심비판 했을까. “유엔사는 한국전쟁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설립됐다”고 한 이시우 <유엔군 사령부> 작가의 말에 그 실마리가 있다. 이시우 작가는 설립 직후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던 유엔을, 미국이 패권과 온갖 외교 책략을 동원해 쥐고 흔들어 유엔사를 출범시킨 점을 강조하며 이 같이 지적한 것이다.

애초 유엔의 설립목적은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다. 이런 점에서 전쟁을 위해 탄생한 유엔사는 본래 취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단아라고 평가할 수 있다. 1945년 10월 24일, 6500만 명 이상의 인명이 무참히 학살당한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막고자 등장한 유엔은 헌장에서 ‘전쟁이 정당화되는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에 공헌하기 위하여 모든 국제연합 회원국은 안전보장이사회의 요청에 의하여 또는 그 이상의 특별협정에 따라,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목적상 필요한 병력, 원조 및 통과권을 포함한 편의를 안전보장이사회에 이용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
-유엔헌장 제43조

헌장에 따르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통과, 특별협정 단 두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전쟁 개시는 불가능하다는 것. 마차오쉬 유엔주재 중국대사도 네벤쟈 대사에 맞장구치며 “냉전의 산물인 유엔사가 한반도의 남북간 화해와 협력에 장애물 돼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유엔사는 유엔 산하기구가 아니며 안보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북·유엔사 3자 협의체가 가동되는 등 한반도에 대한 유엔사의 영향력은 엄연한 현실이다. “길을 막지 말고 남북 간 대화를 진전시키라. 유엔사가 신 베를린장벽이냐”고도 한 네벤쟈 대사의 말은 유엔사를 통해 남북대화에 제동 걸려는 미국을 향한 날선 경고다.

1994년 6월,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안전보장이사회는 통합 사령부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것을 ‘권고’했고, 그렇기에 통합 사령부의 해산 명령은 유엔이 아닌 미국의 권한 하에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유엔사는 필요 없다’는 러시아·중국의 목소리는 현재로서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략인 셈이다. 이에 대해 유엔사 측은 침묵을 지키며 직접대응을 삼가고 있다.

유엔사는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무력행사를 공인받고자 탄생시킨 전쟁기구다. 여기에 멋대로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라는 이름을 붙여 유엔의 권위를 획득하려 노력했던 미국의 목적은 오로지 전쟁, 또 전쟁이었다.

유엔사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한반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을 향한 적대적 침략훈련을 전개해 온 주한미군(한미연합사)가 이 땅의 평화를 지켜준다고?

비유하자면 국제사회로부터 억지로나마 한국전쟁 개입을 인정받기 위해 돌진한 모양새였다. 이렇게 ‘유엔 없는 유엔사’를 만든 미국의 외교적 꼼수-반칙은 외교-전쟁사에 길이길이 남을 대사건이었다.

2. 국무장관 애치슨의 시나리오 ‘유엔은 미국의 먹잇감’

유엔사가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기능할 수 있는 배경. 그 출발에는, 유엔의 권위를 빌려 한국전쟁을 ‘기획’하고 끝내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은 미국 정부의 주도면밀한 책략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유엔사는 1950년 7월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통해 창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다수 관련기사들도 이 날짜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자칫 미국이 미리 한반도 무력개입을 위해 철저히 전쟁 시나리오를 써 온 노림수를 덮어버릴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수행하라.”

일본 토쿄에 주둔하던 극동사령관이자 GHQ 수장인 더글러스 맥아더는 6월 25일 미 정부에서 날아온 소식에 당황했다. 당초 맥아더를 비롯한 미 군부는 소련에게서 대만을 사수해야 한다며 대만에서의 결전을 단정 짓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미 군부는 국무장관 딘 애치슨과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결정에 발맞춰 한국전쟁에 뛰어든다.

6월 25일과 6월 27일 두 차례 블레어하우스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트루먼은 한국전쟁 개입을 기정사실화한다. 회의 직전까지 중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대만전쟁’을 주장하던 국방부방관 루이스 존슨은 어리둥절했다. 트루먼은 이 자리에서 형식적으로나마 “기탄없이 의견을 달라”고 했지만 군부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임기 : 1945~1953)

트루먼을 대신한 지휘자는 애치슨이었다.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꿰고 있는 노련한 전문가인 애치슨은 38선 주변 곳곳에서 남북 간의 소모전이 이어지던 상황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6월 25일을 기점으로 북한군이 남한으로 진격했으며 유엔 안보리에 한국전쟁 개입을 위한 결의안을 올려야한다고 트루먼에게 보고했다. 결의안은 이미 작성을 끝낸 상황이었다. 바로 이 결의안에 집단안보체제(다국적군)를 바탕으로 한 유엔사 설립내용이 담겨있었다.

미국 제51대 국무장관 딘 애치슨 (임기 : 1949~1953)

안보리의 동의를 받기 전인 6월 26일부터 미국은 군사행동에 돌입했다. NSC-68에 따라 군비를 500억 달러 이상 증강하는 조치도 병행됐다. 국제법적으로 명백히 불법인 미국의 군사행동은 이후 통과된 결의안으로 얼렁뚱땅 무마됐다. 미국은 마치 이런 상황을 ‘눈 빠지게’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소련과의 전쟁을 불사할 만큼 호전적인 군부가 있었는데 미국은 굳이 왜 이런 귀찮은 일을 벌여야 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으로 유엔이 설립된 상황에서 상대국에 대한 ‘무턱대고 선전포고’는 명분을 얻을 수 없었다. 더구나 또 다른 초강대국 소련과의 결전은 미국에 극심한 손해를 끼칠 터였다. 미국이 눈을 한반도로 돌린 이유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외교적으로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나서는 초강대국’의 모습을 연출해야 했던 것이다.

공산주의진영을 대표하는 소련은 미국을 크게 견제하고 있었다. 뒤편으로는 소련의 안보리 출석을 저지시키기 위한 미국의 외교력이 발휘됐다. 6월 27일 스톡홀름의 한 레스토랑에 트리브그 리 유엔사무총장, 미국의 어니스트 그로스 대사, 소련의 야코프 말리크 대사가 한 자리에 모여 미국이 이날 안보리에 올릴 한반도 의제를 사전 논의했다. 말리크가 “난 거기에 참석 안 하오”라며 선을 긋자 그로스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말리크가 안보리 참가를 거부한 결정적 이유. 얄궂게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이 ‘유엔 안보리에서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행패를 부리는 미국을 국제사회가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는 이 정보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그로스의 ‘최종 확인’을 통해 유엔사를 밀어붙여도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7월 7일 미국 주도의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를 창설하는 결의안 ‘S1588’이 안보리를 통과했다. 7월 25일, 미국은 토쿄에서 문을 연 통합사령부에 은근슬쩍 유엔군사령부라는 이름을 멋대로 붙였다. 미국을 비롯해 16개 국가의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이 일본을 거쳐 한반도로 밀려들어오면서 한국전쟁은 200만 명 이상이 희생당한 국제전으로 확대된다.

*2장의 내용은 이시우 작가의 <유엔군 사령부>를 참고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글은 ‘유엔사, 해체해야 할 역사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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