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관함식이 남긴 것들

욱일기 치우니 미군이 왔다

“제주 해군기지는 보나마나 미군기지! 국제 관함식은 제주의 군사기지화 선포식!”
-10월 14일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강정마을’ 페이스북 공식계정에 올라온 글

10월 14일 제주국제관함식 반대집회가 열린 제주도의 모습. ⓒ 강정마을 페이스북 공식계정

지난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해군기지가 들어선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제주도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역대 최대 규모 관함식’을 규탄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빗발쳤다.

‘욱일기 자위함’이 우리 여론에 입항하지 못 한 제주관함식, 이번엔 미군이 말썽이다.

강동균 전 강정마을 회장은 “강정마을이 미군의 전초기지가 됐다”고 외쳤다.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낙점된 이 땅에서 평화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그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이번 관함식에서 최우선으로 눈여겨봐야 할 건 5700명이 승선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CVN-76-10만2000t급)다. 우리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제주 뭍으로 올라선 레이건 호의 미 해병들은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의 규탄 팻말을 보며 “뻑큐” “노예(SLAVE)” 등 멸시와 성희롱의 말들을 내뱉었다.

그러나 경찰은 정당히 항의한 주민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연행했고 그 과정에서 내팽개쳐진 이들은 병원에 실려 갔다. 야밤에 술주정 행패를 부리고 경찰관을 때려도 조사받지 않는 미군과는 그 처지가 아주 딴판이다.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우리 경찰은 미국의 ‘심기 보호’에만 열심이다.

이 뿐만 아니다. 레이건 호가 선박 주위에 오일 팬스(기름 방어막)를 둘러치고 기름을 쏟아버리는 것도 모자라 미군 담당자들은 방진복과 방호복을 입고 수상쩍은 검은색 비닐봉투까지 마구잡이로 실어 날랐다. 방사능폐기물질이 아니냐는 지적에 미군 측은 “아니”라고 했지만 의구심은 떨칠 길이 없다.

레이건 호는 가뜩이나 지난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폭 사태 당시 방사능물질에 뒤덮였단 의혹이 무성하다. 지난해 11월에도 제주도에 입항한 미 핵잠수함이 대략의 핵폐기물을 유출했다. 우리의 주권은 온데간데없이, 제주 앞바다는 미국의 방사능쓰레기처리장이 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 해군 측은 “폐기물은 해당 에이전시에서 관리하고 있고, 아마 육지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무책임으로 버티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불평등한 소파(SOFA·주한미군 주둔군 지위협정)에 따라 미군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음을 무력하게 시인한 셈이다.

국제관함식은 한반도평화 해치는 무력행사

국제관함식의 기원은 1914년 ‘대영제국’의 조지 5세가 벌인 스핏헤드 관함식이다. 당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거느리던 제국주의 1등국 영국은 전함 100척을 통해 전쟁무력을 과시했다. 2018년 제주관함식에선 미국의 레이건 호가 선두에 섰다. 그 취지는 똑같다.

제주관함식에 모인 각국의 고위급 군사관계자들 ⓒ 대한민국 해군 페이스북 공식계정

제주관함식을 반대하는 이들은 “축제를 가장해 입항한 미 핵항공모함에 함께 분노해 달라”고 힘주어 말한다, 반면 문 대통령은 “하와이는 세계 최대 해군기지가 있지만 평화의 섬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제주도가 평화의 거점이 될 수 없음을 여실히 증명할 뿐이다.

태평양 한복판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의 해군기지가 들어선 하와이는 세계적 관광지다. 그런데 표면적으론 번영하는 듯한 이 지역 주민들은 ‘알람’ 하나에도 공포에 시달린다. 올해 1월 13일(현지시간) 하와이를 울린 탄도미사일 위협을 알리는 재난알람에 주민과 관광객들은 엄청난 생존위협에 맞닥뜨렸다.

욕조에 몸을 숨겨 평화를 기원하는 이들, 울부짖는 남녀, 사람이 빠져나가고 덩그러니 놓인 차량들. 하와이의 평화는 단숨에 깨졌다, 10분 뒤 하와이 비상당국은 “오보”라고 했지만 한동안 하와이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군사기지가 위치한 곳의 일상은 이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제주해군기지의 무력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준다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번 제주관함식은 역대 국제관함식 중 최대 규모다. 46개국이 참가했고 레이건 호를 비롯한 12개국의 함정 17척이 정박했다. 여기에 한국의 함정 24척, 항공기 24대가 함께했다. 각국 군사고위관계자가 사열을 받는 장면으로 최신군함과 군사시설을 홍보하기에 딱 맞는 군사이벤트다. 그렇지만 카약을 타고 각국 군함을 헤치며 해상시위를 벌인 ‘제주군사기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 대책위원회’의 목소리는 거의 묻혔다.

한국으로선 1998년 진해, 2008년 부산에 이어 세 번째 관함식이다. 캐나다, 인도 등의 군함도 레이건 호에 질세라 ‘기름 쏟아내기’에 분주했다. 2007년 해군기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해군기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선언했지만, 하와이는 해군기지가 곧 평화라는 등식이 새빨간 거짓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초 미국의 핵추진항모와 해병이 제 집 드나드는 군사기지가 어떻게 민과 군이 어울리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될 수 있겠나. 이미 마을공동체는 기지를 찬성하는 주민들과 결사반대하는 주민들로 분단돼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도함에 탑승한 주민들이 맞은편 군함에 손을 흔드는 등 민과 관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훈훈했다고? 우리 속담에서 하늘이 손바닥을 가릴 수 없다고 했다. 아무리 이런 분위기를 연출해봤자, 미군을 위시한 군대의 만행을 가릴 수 없다.

해군기지에 이어 공항까지…제2의 4.3 부르는 미국

제주관함식 기간 동안 주변에서는 미국의 핵항공모함(로널드 레이건 호)을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 강정마을 페이스북 공식계정

‘제2의 평택 대추리’ ‘4.3영령의 통곡’ 제주해군기지에 따라붙는 말들이다. 주민들의 저항이 끝내 미군이 동원한 군홧발에 짓밟혔다는 점에서 세 풍경은 무척 닮아있다. 미국의 군사적 야욕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제주해군기지는 제주도 최남단에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제주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눈에 확 들어온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와 대만해협, 그리고 황해를 하나로 있는 중심축에 기지가 있다. 중국과는 미국의 대형해군기지가 위치한 오키나와보다 가깝다. 한미일 군사연계 강화를 강조하는 미국이 중국을 무력으로 에워싸기에 강정마을이 최적지란 얘기다.

반면 삶이 짓밟힌 주민들은 “끝까지 싸우겠다”를 부르짖는다. 이도 모자라 제주 성산읍 제2공항 부지에 들어설 공군부대 ‘남부탐색구조부대’를 통해 미 전략폭격기가 들어올 거란 우려도 점점 현실화되어가고 있다. 만약 제주도가 버티지 못하면 한반도 전역에 ‘전쟁위협’이라는 높다란 파도가 밀려올지도 모른다.

일제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패색이 짙어지자 알뜨르 훈련장(비행장)에서 자살특공대 ‘카미카제’를 훈련시켰다. 21세기, 동북아 패권이 무너져가자 미국은 제주도에 눈독을 들여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제국주의의 나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일단 레이건 호는 16일 제주도를 떠났다. 그러나 미국은 언제든 돌아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소파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이 언제 어느 때 해군기지와 공군기지를 활용해도 우리 군이 막아설 길은 없다. 레이건 호의 폐기물 투척에도 찍 소리 못하는 데 무슨 수로 거부하겠나.

1948년 미군정은 ‘빨갱이 소탕’을 구실삼아 제주도민 3만 명 이상을 참혹하게 학살했다. 구럼비 바위, 연산호 군락, 붉은말똥게, 맹꽁이, 제주세뱅이…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죽어간 뭇 생명들의 이름이다. 지금의 제주도는 평화의 거점이 아니라 학살터다.

도민들은 “미 핵항공모함 들어온 제주 4.3 영령 통곡한다”고 부르짖는다. 남북이 함께 손 맞잡고 판문점선언이 명시한 “자주통일”로 내달려가는 오늘이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데 ‘외딴 섬’ 제주도는 한반도가 아니란 말인가. 이 잘못된 역사가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하는가.

현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 더 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경기장 연설에서 자주통일과 민족자결을 외친 것처럼, 유럽을 순방하며 ‘대북제재 완화’를 외친 것처럼 미국의 폭주를 떨쳐내기 위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제주의,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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