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는 누가 깨뜨렸나] ➀ 비핵화 약속한 제네바합의를 어긴 미국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12일 사상 처음으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를 향해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북미공동성명을 이행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드러낸다. 북한이 비핵화를 할 생각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보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비핵화 합의를 지키지 않은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94년, 비핵화를 합의했던 북한과 미국

당시 북한은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변에 시험용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여 이용하고 있었다. 영변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인 플루토늄이 생성되었다.

당시 미국의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영변 발전소에서 생성되는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 것을 우려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영변 발전소에 대한 공방을 주고받은 끝에 1994년 제네바합의를 체결하였다.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합의에서 영변 발전소를 핵연료 통제가 쉬운 경수로 발전소로 대체하기로 합의하였다.

북한은 제네바합의 후 1개월 이내에 영변 발전소를 동결하고 미국은 2003년까지 경수로 2기를 북한에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은 경수로 완공 전까지 북한에 대체에너지로 연간 50만 톤의 중유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북한과 미국은 무역 및 투자 제한을 완화하고 점차 정치 및 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하였다. 또한,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는 공식 보장을 제공하기로 하는 등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잔류하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등 핵을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조치하기로 하였다.

‘제네바합의’는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체결한 합의이다. 핵을 보유한 국가를 비핵화하는 것보다는 핵을 개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에는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 합의가 지켜졌더라면 애초에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며 “조선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제네바합의는 왜 파기되었을까?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미국

1994년 10월 21일에 체결한 제네바합의에 따라 북한이 이행할 조치는 영변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하고 사용한 연료봉을 미국과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다. 또한 북한과 IAEA의 협정에 따라 IAEA의 임시 및 일반사찰을 하는 것이다.

미국이 제네바합의에 따라 할 일은 경수로를 제공하고 중유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미국은 북한에 핵무기 불위협, 불사용에 대한 공식 보장을 제공하고 북한과 미국이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나가기로 하였다.

북한은 94년 11월 1일 핵 활동 동결을 선언하고 11월 28일 IAEA가 핵 동결이 사실임을 확인하면서 제네바합의를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기술진을 파견하여 1995년 북한 원자로 폐연료봉 8000여 개를 확인하고 1997년까지 밀봉을 완료했다.

미국은 1995년 1월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어 같은 해 3월 한반도 에너지 개발기구 (KEDO)를 설립하여 1997년 경수로 부지 공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점차 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 일단 미국은 경수로 공사를 지지부진하게 지연시켰다. 미국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경수로 1호기 공사는 굴착공사를 31.2% 진행했을 뿐이었다. 2호기의 경우에도 굴착공사가 25.4%만 진행되었다. 미국은 제네바합의 체결 이후 7년 동안 땅도 다 파지 않은 셈이다.

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며 시간만 끌던 미국은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조지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며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더욱 강화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2002년 북한을 1월에는 ‘악의 축’이라고 발언하는가 하면, 같은 해 3월 국방부 ‘핵 태세 검토 보고서’에서 핵 선제사용 가능 대상에 포함하고 5월에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였다.

또한, 미국은 경수로 건설 시한인 2003년이 다 되어가도록 경수로 공사가 진척이 없는 가운데 2002년 11월 중유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기도 한 존 볼턴 당시 국무부 차관은 “이제 미 의회에서 94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대한 지지는 없으며, 경수로가 건설될 전망은 전혀 없다”고 까지 말하였다.

이에 북한 외무성은 2002년 12월 “중유 공급 중단 등 일방적 조치로 인해 제네바 기본합의문이 사실상 파기됐”다고 지적하며 2003년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하였다.

북한 정권 전복을 노리고 고의로 합의를 깨뜨린 미국

미국은 왜 경수로를 제공하지 않고 중유 공급을 중단하는 등 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았을까.

클린턴 행정부가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않은 것은 몇 년 안에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던 북한에 국제 환경이 불리해졌으며 1994년에는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은 1990년대에 몇 년 동안 연이어 큰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북한은 붕괴에 직면해 있다”고 장담하며 “빠르면 사흘, 길어도 3년” 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미국은 북한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해 제네바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대결과 압박을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적대 정책을 노골적으로 강화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02년 10월 21일 ‘북한엔 미국이 합의 파괴자(For North Korea, U.S. is Violator of Accords)’라는 기사에서 “제네바합의의 내적 논리에는 북미 사이의 관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특히 (부시 정권 출범 후) 지난 2년간을 돌이켜보면 관계개선은 고사하고 더 악화했다”는 찰스 카트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의 발언을 소개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적대 정책으로 결국 제네바합의는 파행으로 끝나게 되었다.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해야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안전을 담보하고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경제지원을 할 것처럼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7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경우, 적대관계를 확실히 종식할 뿐 아니라 경제적인 번영까지 도울 뜻이 있다는 의사를 분명히 피력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이전에는 북한과 공존하는 것보다는 북한을 고립하여 붕괴시키는 고립·압박 정책을 선택했다. 미국이 제네바합의를 통해 한반도에 핵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기회를 내던진 셈이다.

지금 북한은 과거와 달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북핵 폐기를 바라는 미국으로서는 상황을 더욱 악화한 결과를 낳았다. 제네바합의 파기 과정을 보았을 때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6월 12일 김정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모두 발언에서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고 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 발언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김정은 위원장의 모두발언에 대해 “옳은 말이다. 대단히 감사하다. 모두 감사드린다”고 긍정 반응을 보였다.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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