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바로보기 : 성범죄] ③ 성범죄를 저질러도 줄줄이 풀려나는 주한미군

주한미군은 미군 위안소를 설치하여 기지촌 여성들을 위안부 삼아 인권을 짓밟았다. 또한, 주한미군은 기지촌 여성들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다. 주한미군은 성범죄를 저지르며 공공장소도 아랑곳하지 않는가 하면, 항의하는 시민, 출동한 경찰관에게도 오히려 폭력을 행사하였다. 주한미군은 성범죄를 위해서 살인과 납치도 불사하였다.

주한미군 범죄의 책임은 미 당국과 주한미군 사령부에 있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미군 병사가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비인간적 범죄’를 단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한미군 사령부는 동맹국이라면서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인권을 유린한 미군 범죄자 보호에만 관심을 가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두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 이른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다.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은 2002년 경기도 양주에서 주한 미 육군 제2보병사단의 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측병 페르난도 니노가 장갑차로 두 여중생을 짖밟아 숨지게 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국민이 대규모 반미 촛불을 든 결정적인 계기는 장갑차를 몰았던 주한미군이 미군 군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었다. 국민은 사람을 죽인 미군이 처벌조차 받지 않자 우리가 도로 위의 동물만도 못한 신세냐고 반발하며 탱크라도 구속하라고까지 할 지경이었다.

단지 여중생 장갑차 압사 사건뿐만이 아니다. 주한미군 사령부는 갖은 방법으로 미군 범죄자를 처벌받지 않도록 보호하였다.

범죄를 저질러도 재판을 받지 않는 주한미군

먼저 주한미군 사령부는 미군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가 재판을 받지 않도록 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이 주한미군 범죄에 재판권을 행사하는 비율은 30%가량이다. 미군범죄의 70%는 재판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가 공개한 법무부 미군범죄 발생 및 처리현황에 따르면 2015년의 경우 주한미군은 파악된 것만 289건의 범죄를 일으켰다. 이 중에서도 한국에서 재판을 받은 것은 고작 82건, 비율로 28%에 불과하다. 다른 72%의 주한미군 범죄는 한국에서 재판조차 받지 않았다.

주한미군이 저지른 성범죄는 재판권 행사율이 더욱 떨어진다.

2015년에 주한미군 강간 및 추행 범죄는 18건이 접수되었다. 18건의 강간 및 추행 범죄 중 한국이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4건뿐이다. 재판권 행사율은 22%로 전체 범죄의 재판권 행사율 28%보다도 낮다. 2010년의 경우 강간 및 추행과 성폭력 범죄가 13건 접수되었으나 재판권을 행사한 것은 단 1건에 불과하였다. 또한, 최근 10년 중 2008년, 2009년, 2012년에는 각각 5건, 4건, 3건의 강간 및 추행, 성폭력 범죄가 접수되었으나 그중 단 한 건도 재판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나마 현재 재판권 행사율이 20%인 것은 전보다 많이 개선된 것이다. 2001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를 개정하기 전까지 주한미군 범죄의 재판권 행사율은 10%도 미치지 못했다.

1992년의 경우 주한미군 범죄가 725건이 접수되었고 이 중 한국은 단 10건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하하여 재판권 행사율은 1.3%에 불과했다. 1992년 윤금이 씨 살해사건 이후 한국의 재판권 행사율이 높아진 것이 겨우 2001년 7.4%인 것이다.

1990년대 이전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여 한국 재판권 행사율이 1%도 되지 않았다. 1985년의 경우 미군 범죄 사건이 총 1445건 접수되었는데 한국은 고작 9건만 재판을 했고, 재판권 행사율은 0.6%이다. 1% 미만의 재판권 행사율은 한미 SOFA 체결 직후인 1967년부터 1990년까지 유지되었다.

용의자를 알고도 못 잡는 ‘미제사건’

주한미군은 범죄를 저질러도 재판을 받지 않는 불공정한 치외법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주한미군이 용의자로서 밝혀졌을 때 논의할 수 있는 일이다. 주한미군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용의자를 체포하거나 기소하지 못하는 경우엔 ‘미제사건’이 되는 것이다.

주한미군 사령부가 주한미군을 보호하는 방법은 단지 한국에 재판권을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한국 경찰이 수사하여도 주한미군 사령부가 협조하지 않아 시일이 차일피일 늦춰지는 것은 일쑤이며, 그동안 주한미군 사령부는 용의자를 미국으로 출국시키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언급하였듯 1999년 신차금 씨 살해사건도 주한미군 사령부가 미군 용의자를 사건 직후 미국으로 귀환하여 용의자를 도주시켰다. 같은 해 이정숙 씨 사건의 경우 한국 경찰이 용의자의 신병을 인도해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주한미군 사령부가 거절함으로써 한국 경찰은 범인을 체포하지 못하였다.

1995년 6월 미 8군 소속 제임스 케이 리는 한국인 여성을 흉기로 찔러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구속되기 전 김포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도주하였다. 1996년 3월 12일 대구에서 정종자 씨가 호텔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에서는 유력한 용의자로 추정되던 미군 제 19지원사단 소속 그레고리 일병이 3월 20일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심지어 경찰이 수사했으나 용의자를 체포하지 못한 것 외에도 소리소문없이 묻히는 사건도 있었다. 2003년 2월 9일 방영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익명의 기지촌 여성의 인터뷰가 소개되었다. 이 여성은 주한미군이 기지촌 여성을 산속에 끌고 가서 죽여도 자기네들끼리 시체를 치우고 흐지부지되어 알려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여 미제사건으로 남았으므로 주한미군 범죄 통계에도 들지 못하였을 것이다. 1990년대까지 매해 2천 건, 그 후 매해 수백 건에 달하는 범죄 외에도 주한미군 범죄는 추가로 더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주한미군에게 관대한 한국 법원

주한미군에게 관대했던 것은 주한미군 사령부만이 아니었다.

1993년 5월 미 2사단 존 로져 살로이스 병장은 서초동에서 호프집을 경영하던 여성을 성폭행하였다. 로져 병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로져 병장은 즉각 항소하였고 2심 재판부는 로져 병장에게 1심 판결에 한참 못 미치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였다. 심지어 로져 병장은 1995년 1월 수감되었으나 같은 해인 8월, 수감 7개월 만에 8.15 특사로 사면되었다. 참 기가 막힌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1996년 미 제 7공군 소속 윌리엄스 약 에스 일병은 경기도 평택 에바다 농아원의 아이를 평택 미 공군기지로 데려가 강제 추행하였다. 그 후에도 윌리엄스 일병은 다른 두 아이를 같은 방법으로 성폭행하였다. 윌리엄스 일병은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석방되었다. 재판부는 윌리엄스 일병이 주한미군으로서 열심히 일하였으며 불명예제대를 하는 점을 감안하였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1년 7월 24일 경북 칠곡군에서 인근 캠프캐럴 소속 조셉 핀리 이병이 여성을 성폭행하였으나 대구고등법원은 조셉 이병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여 구속을 면한 것이다.

2013년 박정경수 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범죄를 저지른 미군들 대부분이 집행유예, 벌금형을 받는다”며 “미군들 사이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성토했다.

미 당국과 주한미군은 한국 정부에 불만이 있을 때 종종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하였다. 미 당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면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이 행여 철수할까봐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곤 하였다. 그렇게 주한미군은 한국 정부에 미군 위안소를 요구하는가 하면, 성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곤 하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신고조차 되지 않은 주한미군의 범죄는 또 몇이겠는가. 왜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 국민들이 범죄를 당하고도 숨죽여 살아야 하는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주한미군이 처벌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이제, 주한미군 주둔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재검토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사회가 주한미군을 이 땅에 들인 대가로 끔찍한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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