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위원장의 ‘진격의 파격행보’, 그 속내는?

* 지난 4월 5일 통일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최고지도자의 호칭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 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 기사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으로 호칭합니다.

“180도 변신”, “파격의 연속”, “거침없는 행보”…

ⓒ 청와대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세간의 시각입니다.

올해 김정은 위원장은 1월 1일 신년사에서 “우리는 대회(올림픽)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 등의 언급으로 ‘사실상의 남북회담’을 제안했고 곧이어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김영남·김여정 특사단을 통한 친서전달부터 평양공연 남한 예술단 만남까지, 김정은 위원장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말폭탄’을 주고받으며 “불로 다스리겠다”는 표현까지 썼던 김정은 위원장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근 행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요?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온 김정은 국무위원장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 꾸준하게 제기해온 것이 있습니다. 바로 “평화협정 체결”입니다. ‘평화협정 체결’이란 ‘쉬는 중(휴전)인 한국전쟁을 종식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최고지도자 위치에 오른 이후(2012년)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 왔습니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은 처음으로 발표한 신년사(2013년 1월 1일)에서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 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적환경을 마련할 데 대한 우리의 공명정대한 요구를 한사코 외면”하고 있다면서 비난했으며 “조선반도(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하여 책임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2016년 5월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했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조선(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은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이며 조국통일의 필수적 전제”라면서 “군사적긴장상태를 완화하며 모든 문제를 대화와 협상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 청와대

이렇듯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중요한 계기 때마다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습니다.

꾸준히 평화협정을 요구한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한 미국

사실 “평화협정 체결”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협상 이후 북한이 수십 년간 요구해온 것입니다.

1953년 유엔군(미군)과 북한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은 휴전협정, 즉, 전쟁을 일시 중단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a military armistice in Korea)”을 맺습니다. 그리고 협상당사국들은 체결 3개월 후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문제들을 협의”하는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러나 1954년 4월에 열린 제네바 회담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평화 협상을 무가치하다”며 평화협정 체결 논의를 회피했고 이후 협상 당사국들 간에 구체적인 평화협정 체결 논의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북한은 꾸준히 미국에 평화협정을 맺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한반도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적극 노력한 것입니다.

1962년 북한 최고인민회의(국회)는 미국과 한국에 공식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후 남북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습니다. 이후 1963년 18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은 “남북무력불가침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합니다. 7·4 남북 공동성명이 맺어진 후인 1974년 최고인민회의는 미국 의회에 평화협정 체결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듬해 9월 30차 유엔총회에서 북미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북미 양자회담을 제안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남북미 3자 군사당국자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그리고 1985년 김일성 주석은 신년사에서 “북미 평화협정, 남북 불가침선언”을 맺자고도 주장했습니다.

이외에도 북한은 특정 계기 때마다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해왔습니다. 아마 수십 년간 북한이 발표한 평화협정 체결 내용의 논평, 제안문, 서한, 통지문, 연설 등을 모두 모으면 수백 건, 아니 수천 건에 달할 것입니다.

이러한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호소에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미국은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에 사실상 ‘침묵’ 내지 ‘묵살’로 일관해왔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평화협정 체결 호소’에 미국은 ‘북핵 문제’부터 논의하자며 ‘회피’해왔습니다.

2015년 11월에도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성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2015 코리아 글로벌 포럼’ 오찬연설에서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안에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평화체제로 가려면 그 전에 비핵화의 핵심 이슈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 식으로 회피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노력은 2000년대로 넘어오게 됩니다.

2005년 남, 북, 미, 중, 러, 일이 함께 맺은 9.19공동성명에서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이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시작할 것을 관철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2006년 5월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 군함을 동원시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진행했고 결국 9.19공동성명이 파기되면서 평화협정 체결논의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 버렸습니다.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2011년 12월 30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일례로 2015년 10월 7일 북한 외무성은 미국에게 “우리가 보낸 평화협정 체결 메시지에 응하라”는 제안을 했으며 10월 17일에도 “미국은 평화협정 문제 회피 말고 옳은 선택 해라”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2월 13일 북한 노동신문은 “조선반도(한반도)에 평화 보장되려면 미국이 우리와 평화협정 맺어야”한다는 내용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보는 올해까지 이어져 2018년 1월 18일 조선법률가위원회 백서는 “조미평화협정체결을 외면하는 미국의 범죄적책동을 단죄한다”는 논평을 발표했습니다.

이렇듯 북한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주요 신문의 논평, 서한, 발표문 등을 통해 미국에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협정 체결 대신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선택한 미국

북한이 ‘응답 없는 평화협정 체결 메시지’를 수만번 날리는 동안 미국은 매년 휴전선 일대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해왔습니다.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는 북한이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가지는 공포를 이렇게 설명한 적 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군이나 중국군과 핵무기를 동원한 전쟁훈련을 매년 휴전선 일대에서 수개월씩 진행한다고 상상해 봐라. 과연 한국 사람들은 그 시기에 발 편히 뻗고 잘 수 있을까? 북한은 그런 공포를 수십 년 동안 겪어왔다.’

한반도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해 온 미국이란 나라는 2000년대에만도 “악의 축”, “테러지원국”, “독재국가”로 꼽았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총 4개국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꼽힌 북한은 휴전선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매년 2-3차례 이상 진행하는 미국을 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 땅 한반도도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결국 북한은 2005년 “자위적 조치로 핵무기를 만들었다”라며 핵보유선언을 합니다.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북한이 핵을 개발한 이유는 지금까지 미국이 핵이 가진 나라를 공격한 적이 없다는 선례에 근간한 것으로 보입니다. 2003년 이라크침략도 사실 미국이 이라크에 미사일, 핵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감행한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주목한 1970년대 미중관계 개선의 비결은?

게다가 북한은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도 핵무력을 고민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뤄냈던 과정에 주목했을 것입니다. 1970년대 미중 관계정상화는 중국이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60년대 말까지 대만을 중국 대륙의 대표로 인정해왔던 미국이 중국을 ‘나라’로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1970년대 초중반부터였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미국이 ‘착해졌거나’ 혹은 중국이 ‘사회주의를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950년 10월 고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국가주석은 “우리가 원자폭탄을 가질 때 비로소 전쟁광(미국)이 우리의 정당하고 이성적인 요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중국은 미국의 본토 침략을 막고자 수십만 대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면서 ‘전쟁억지력을 위해 핵을 만들 것’을 결단한 것입니다. 이후 중국은 핵개발에 힘을 쏟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964년 10월 중국은 첫 핵시험에 성공하게 됩니다. 장거리미사일 개발에도 힘을 쏟아온 중국은 1964년 중거리탄도 미사일(MRBM) 발사시험 역시 성공했습니다. 1967년 6월 수소폭탄시험까지 성공한 중국은 1970년 4월 첫 인공위성 동팡홍(東方紅) 1호를 발사합니다.

이로서 중국이 미국의 핵공격에 ‘핵보복’으로 맞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핵을 탑재한 중국제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적국’이었던 중국의 이러한 행보에 미국은 ‘차이나 쇼킹’을 받았습니다. 당황한 닉슨 미 전 대통령은 1971년 4월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발표를 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의사까지 내비쳤습니다. 이후 1971년 9월 중국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까지 성공시켰고 다음해인 1972년 역사적인 미중정상회담까지 성사시키게 됩니다.

회담에서 미국은 대만주둔 미군 철수까지 합의합니다. 대만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사실상 포기한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미국이 중국과 수교한 것은 바로 중국의 핵무력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0~1970년대 중국과 유사한 북한의 행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이후 90년대 초중반부터 북미간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미국은 ‘북한 핵개발 의혹’을 계속 제기했고 북한은 ‘안전보장 및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1994년 제네바 협정 등 여러 합의들이 도출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합의들이 사실상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습니다. 겨우 북미합의가 이뤄져도 미국 내에 반대여론이 극심하거나 정권이 교체되면서 흐지부지되어 온 것입니다. 심지어 합의조차 매번 북한이 발사체 시험, 핵개발 등의 ‘무력시위’가 있을 때만 타결되었습니다. (1993년 노동1호(화성 7호) 발사 => 1994년 제네바 합의, 1998년 광명성 1호 발사 => 북미코뮤니케 합의, 2005년 핵보유선언 및 영변 5MW 원자로에서 8000개의 폐연료봉 인출 작업 완료 => 9.19 공동성명) 작년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부터 5월 북미정상회담 결정까지 미국의 최근 변화된 행보 역시 북한이 ICMB 발사시험과 핵시험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북한은 ‘대화만으로 미국을 평화협상의 자리로 끌어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핵억지력이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중국처럼 북한은 핵무력을 증가시켜 왔습니다.

북한, 비핵화할까?

현재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여부가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연 북한은 ‘비핵화’, 즉 핵을 없앨까요?

ⓒ 청와대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면서 중국이 핵무력을 축소하거나 미국이 핵무력을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적국 간에 수교를 하는 과정에서 꼭 핵을 줄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대신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노동당 7차 대회 보고에서 “국제사회앞에 지닌 핵전파(확산)방지의무를 성실히 리행(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즉, 공식적으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 봐야할 부분은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세계 비핵화’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가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흐름에 북한도 동참할 것을 제시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북한의 핵감축을 주장하면서 자국의 핵감축을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양국의 관계가 ‘적’인 상황에서 어느 일방의 핵무력 감축 제안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따라서 북한은 2010년 4월 비망록을 통해 “조선(북한)은 핵보유국이며 다른 핵보유국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국제사회의 핵 군축 노력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김정은 위원장은 5월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북미정상회담을 진행하게 된다면 한국 발표대로 ‘비핵화’ 논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한 세계 비핵화’가 의제로 될 것입니다.

조국통일 3대 헌장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김정은 위원장이 과연 한반도 통일을 바랄지 그 여부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통일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이 곧 ‘북한체제붕괴’인데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체제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통일을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느냐, 북한은 어떤 통일 방식을 바라냐에 대한 부분입니다.

북한 평양직할시 낙랑구역에는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건립되었다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 있습니다. 기념탑의 높이는 조국통일3대헌장의 ‘3’을 상징하는 ‘30m’이며 너비는 6·15 남북 공동선언을 의미하는 ‘61.5m’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이 거대한 기념탑을 조국통일을 위해, 조국통일 3대헌장을 실현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기념탑을 세우면서까지 중요하게 바라보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한국을 흡수통일하겠다는 통일헌장’일까요?

북한이 “우리 민족이 그 어떤 경우에도 변함없이 고수하고 견지해야 할” 통일강령이라고 보고 있는 조국통일 3대 헌장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일을 이루기 위한 원칙과 그 방향, 통일된 나라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우선 조국통일 3대원칙에 따르면 북한은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살펴보면 북한은 ‘체제통일’이 아닌 ‘연방제통일’, 즉 ‘남북자치정부를 인정하는 조건에서 대외적으로 한 나라로 활동하는 형태의 통일’을 바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국통일 3대 헌장 중 하나인 ‘전민족대단결10대 강령’ 역시 “서로 상대방에 자기의 제도를 강요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5항)”며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3항)”하자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연합연방제 통일방안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한 통일방안인 연합제와 북한 통일방안인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이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여기서 합의된 연합연방제는 ‘제도통일’도 아니고, ‘체제통일’도 아닙니다.

일각에는 ‘제도를 합치지 않는 것이 과연 통일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남북 모두 각각의 체제를 포기할 의사가 없는 조건에서 ‘체제통일만이 통일’이라는 시각은 결국 ‘전쟁으로 통일을 하겠다’는 결론 내지 ‘통일을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결말로 도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남북 지도자는 불가피하게 통일국가의 시스템으로 ‘연합제’, ‘연방제’ 등을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유럽연합만 보더라도 각 나라들이 독자적으로 정치, 경제를 운영하면서 공통의 문제만 협의해서 유럽 국가들의 권익을 실현해나가고 있습니다. 연방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도 실정에 따라 언어가 다른 지역이 있거나(오스트리아), 법과 세금제도가 다르거나(미국), 100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거나(러시아), 군사력이 따로 있는(스위스) 조건에서 현황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연방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연방국들이 동일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듯이 우리 민족도 우리 실정에 맞게 자체의 연합연방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체제가 다른 연방국을 만드는 일은 쉬운 과정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쟁공포 완화, 불필요한 군사비 축소, 지하자원, 경제규모 확대 등의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통일이 필요하며 각자의 체제를 포기할 필요가 없는 연합연방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무력통일을 피할 수 있는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에 꼭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 민족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남북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언어가 다양한 연방국들에 비해 연합연방국가를 운영하는데 유리한 이점을 갖게 됩니다. 게다가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남북교류의 역사는 비록 연합연방국의 걸음마 단계였지만 체제가 달라도 교류가 가능하고 서로 경제협력을 통해 상생을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실천으로 보여줬습니다.

결국 남북이 합의한 통일방안, 즉, ‘연합제와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방향은 남북번영과 평화를 위해 어렵지만 반드시 해내야 하는, 또 ‘걸음마는 성공’이었던 통일노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바라는 통일은?

연합연방제는 김정은 위원장도 스스로 밝힌 주장입니다.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부정하고 일방의 사상과 제도에 의한 통일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것이며 전쟁을 하자는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우리는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가 가장 우월하지만 그것을 남조선(남한)에 강요한적이 없으며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요약하면 북한은 사회주의를 포기할 생각이 없고 동시에 남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그리고 “북과 남은 상대방에 존재하는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위)에서 온 민족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련방국가(연방국가)를 창립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민족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며 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고 련방제방식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노력함으로써 온 겨레가 소원하는 자주적이고 번영하는 통일강국을 하루빨리 안아와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사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조선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그 다음해부터 매년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통일문제를 항상 제기해왔습니다. 2013년에는 “북남공동선언(2000년, 2007년)을 존중하고 리행하는것은 북남관계를 전진시키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근본전제”라면서 “우리는 조국통일의 앞길에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인다 하여도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삼천리강토 우에(위에) 통일되고 번영하는 강성국가를 기어이 일떠세우고야 말 것입니다.”이라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2014년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 생애 마지막 서명을 조국통일 문건에 남긴 해(1994년)의 20주년’이라면서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2015년, 2016년, 2017년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매 신년사마다 조국통일에 대한 내용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근 몇 해 안에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였던 조선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조국통일 실현은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렇듯 김정은 위원장은 시시때때 조국통일의 중요성을 언급해왔습니다.

따라서 2018년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을 축하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표단 파견’까지 언급한 것은 과거의 사례들을 봤을 때 그리 유별난 행보는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창올림픽에 고위급 특사단을 전격 방남시키고 북한을 방문한 남한 특사단과 공연단을 만난 김정은 위원장의 활동 역시 실제로 ‘가장 중대하고 절박한 과업’을 이루기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행보’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북 특사단과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한 것’도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 비핵화를 지향’하는 입장이므로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최근 행보는 ‘달라진 모습’이 아니라 예전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김정은 위원장의 ‘본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바라보기만 했던 김정은 위원장을 이제 직접 목격하는 순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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