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가로막는 학살자 미국은 떠나라”

봄 온다지만…아직은 찌푸린 한반도의 하늘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바라보니 가슴이 고동친다. 닫혔던 구름이 걷히고 천지가 열리기 하늘과 한빛이네. 태양이 비치고 내 맘에도 따사론 한줄기 빛이 넘실거리네~”

우리민족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노래, 노래패 우리나라의 <백두산에 올라>가 흘러나오며 시작된 현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지난 3월 31일 오후 2시 15분께 한국대학생진보연합(한대련)과 국민주권연대가 주최하는 ‘한미연합전쟁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촉구 집회’가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 열렸다.

현장은 ‘학살자 미국이여 이 땅을 떠나라’에 호응하며 열띤 분위기에 휩싸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반미는 이 시대 민중의 당연한 요구”라는 구호가 뇌리에 새겨졌다. 이날, 참가자들은 왜 하필이면 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어야만 했을까?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사전 발언대회에 나선 김한성 한대련 대표는 “연초부터 한반도 평화의 바람이 아주 힘차게 일고 있다”고 운을 띄웠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한미군사훈련이 내일(4월 1일) 진행 된다”고 강조했다.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돼있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며 일삼는 미국 주도의 ‘북한 침략훈련’을 즉각 중단해야 비로소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어진 발언에서 양희원 대안대학공동체 강원 청춘의지성 회원은 “전쟁이 지금도 진행 중인 나라”라고 대한민국을 규정했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대화의 물꼬가 확 트인 올해, 한미연합사령부가 실시해 왔던 한미훈련의 규모가 대폭 축소됐단 소식이 들려온다.

실제로 미군은 전략자산을 대거 동원해 한반도에 전운을 고조시켰던 지난해와는 달리 컴퓨터 모의 훈련 위주의 지휘소 연습(CPX)인 키리졸브훈련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남북·북미정상회담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미군이 자세를 낮추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한미훈련이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대북 침략훈련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이 요지부동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협상 과정에서 핵실험 개발 중단”을 거론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정작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연합사는 북한침략을 목표로 삼는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풍경이다. 비유하자면 전쟁의 안전핀이 채워져 있지 않은 채 나뒹굴고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미국이 한반도평화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결정적 이유다. 현장에서 10대부터 80대까지, 참가자들이 피켓과 함께 들어 올린 ▲한미연합군사훈련 영구중단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대북제재 중단 등의 구호가 잇따른 것도 그와 바로 맞닿아있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스산했고 강한 바람이 몰아쳐 ‘쪽 대본’과 옷이 바람에 날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한반도의 봄이 오고 있다’는 사회자의 말처럼 아직 완벽한 봄이 도래하지 않은, 이 땅의 현실을 절감했다.

‘경기에서 진 미국’ 패권몰락 개그풍자

“오늘 경기,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날 행사에서 위의 대사로 포문을 열며 단연 돋보였던 개그풍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첨예한 현안을 고품격 개그로 승화시킨 청춘의지성 소속 시사정치풍자개그동아리 ‘킥’의 호흡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개다리소반에 소품을 올려두곤 털썩 주저앉은 해설자는 위 사회자의 질문에 “화학과 출신답게 과학적인 해설”을 하겠노라 능청스레 당당함을 뿜었건만, 참가자들을 ‘풉’하게 만드는 위험수위(?)의 돌출발언이 쏟아져 웃음을 연신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현황에 대한 비판은 무거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들의 만담에서 붉은 색 옷을 입은 우리(남북)과 ‘그냥 더러운 옷’을 입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미국은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맛본다. 사회자는 “용산에서부터 빠르게 오산, 평택 돌아서 홈으로! 양키고 홈!”이라 열렬히(그러나 미워할 수 없는 개그감각을 겸비한 채) 핏대를 세웠다. 용산과 오산, 그리고 평택은 하나 같이 미군기지가 들어서며 주민들의 생활이 짓눌리고 쏟아져 나온 독극물질에 오염된 지역이다.

두 사람은 ‘국내의 걸림돌’도 빼놓지 않고 콕 짚어냈다. 이들에 따르면 “예상치 못한 복병”인 적폐세력을 대표하는 자유한국당과 성조기 부대, 바른미래당이 ‘레드컴플렉스’를 내세워 미국에 가담했다. “(주한미군) 나갈 거면 나를 밟고 나가라”를 외치는 이들을 그대로 밟고 나가는 미국이 부각된다. 결연하게 애써 ‘주한미군 유지’를 강조했건만 미군이 나가자 뒤따라 꽁무니를 빼는 인사들의 모습.

“진짜 밟고 지나갑니다!”를 목 놓아 부르짖는 해설자에 현장은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입으로는 “든든한 안보”를 강조하면서 기껏 무르익은 한반도평화에 찬물을 끼얹으며 불안을 조성하려는 이들의 정치적 몰락은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해설.

한반도 인근해역에 전개하던 전투기와 항공모함이 물러갔다는 사회자와 해설자의 함성에 따라 참가자들이 만족스러운 “와아”를 뿜어냈다. “처음 공개”라고 하기엔 이상하리만치(?) 완성도가 높은 무대가 만족스러운 퇴장을 알렸다. 특히 미국을 향해 “빠이빠이 빠이빠이야~”라 가락을 담아 노래한 풍경을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 참가자들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애국보수집회 행렬이 지나고

행사는 대체적으로 웃음과 떠들썩한 기운이 감돌며 즐거웠지만 사전집회신청을 낸 이른바 애국보수집회의 행렬이 가까워지자 한때 일시중단 되기도 했다.

점처럼 보이던 집회행렬이 점점 광화문광장과 미대사관에 가까워지더니 현실감각과 괴리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동시에 치켜드는 것만큼은 백번 양보해 이해할 수 있다 치자. 이스라엘국기가 나부끼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경찰이 ‘평화통일집회’ 참가자들을 보호(?)해 준 점은 퍽 인상에 남았다. “정신나간 것들” 등의 욕지거리를 말하며 근처에서 시비를 걸던 애국보수집회참가자가 경찰에게 저지당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촛불혁명으로 예전의 내가 알던 세상과는 크게 달라졌음을 새삼스레 실감했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가치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만큼 미국에게 우리민족의 흥과 저력을 과시한 풍물놀이와 <격문>은 매우 인상 깊었다. “(남북교류) 다 열린다 안카나!”와 함께 시작된 풍물은 꽹과리와 징과 장구와 북의 채를 집어든 손들이 조화롭게 ‘얼쑤’ 하는 민요가락의 신명나는 조화가 눈부셨다.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흰 한복을 갖춰 입고 무대 앞에 나선 남성 1명, 여성 2명은 ‘주한미군 철수, 지금이 최적기다’를 주제로 격정적인 격문을 토해냈다. 주한미군을 “해방 후 이 땅에 들어와 70년 넘게 주인 행세를 하고 있으며, 자주독립국가 건설의 염원으로 들끓는 민중을 무참히 죽이고 무단 침입한 점령군”이라고 강조한 격문이 끝났다.

이어진 흥겨운 율동을 담아낸 민중가요 <우린 하나요>의 선율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느껴졌다. 노랫말 “둘도 없는 우린 하나요. 누가 뭐래도 우린 하나요”로 우리민족끼리 분단을 돌파해내자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도대체 ‘누가’ 이 땅에 제멋대로 분단선을 그었단 말인가.

제주 4.3항쟁의 부르짖음 “누가 우리들을 죽였는가”

이번 집회에서는 제주 4.3항쟁 70주년을 맞아 학살을 주도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음악공연도 비중 있게 펼쳐졌다.

어느새 흥겨움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더니 “누가 우리들을 죽였는가?”란 비장한 노랫말이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내리깔렸다. ‘제주4.3항쟁을 기억하며’란 부제를 단 노래악단 ‘씽’의 창작곡 <누가>가 서정적이며 음울한 피아노선율과 함께 귓가에 머물렀다. 사건으로, 혹은 반란으로, 항쟁으로, 학살로 규정되는 4.3 7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4.3의 본질은 학살을 당하는 순간에 굴하지 않는 민중의 항쟁이다.

“섬에 있던 사람들은 보았다.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날 우리는 죽었는가 누가 우리를 죽였는가” 누가, 그 누가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를 뛰어넘는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그리도 무참히 쏘아 죽였던가.

지금까지 드러난 4.3의 핵심은 학살의 배후에 미국의 그늘이 짙게 어른거린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떨쳐나선 민중의 항쟁이 연이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4.3은 학살에 굴하지 않던 민중의 항쟁으로 인식되어야 옳다.

아직 음원이 공개되지 않은 <누가>, 따라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는 마치 진상이 제대로 소명되지 못한 4.3항쟁 당시 자행된 끔찍한 학살의 한(恨)을 모두와 함께 풀어내는 씻김굿으로 와 닿았다.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 수정 등의 방해공작이 이어졌던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적폐를 뛰어넘어야 한다. 학살의 시기는 해방 뒤 미군정이 이 땅에 주둔한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이제야말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비극의 되풀이를 막을 수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발간된 진상보고서는 미군이 4.3 당시 진압작전을 전두지휘하며 학살에 동참했음을 적시하고 있다.

미대사관 영역을 둘러싸고 을씨년스럽게 표정을 찌푸렸던 이날의 하늘은 혹여 학살당한 제주도 민중들의 넋이 날씨로 드러난 것은 아니었을까.

윤태은 한대련 교육국장의 지적은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고 있다. “우리 민중의 의지 없이 미국이 한반도허리에 선을 긋고 그 상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한국전쟁부터 얼마나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습니까? 누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서 우리 대학생들이 더 힘차게 싸워나갑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고 제주도에서 열리는 추념식에 참가하기로 했다. ‘완전한 해결’은 4.3 당시 미국의 개입을 하나부터 끝까지 밝혀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미국의 개입에 선을 그은 채 펼쳐지는 진상규명이란 불가능하다. 정부는 반드시 이 점을 놓지 말아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의 엄혹한 현실이고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이날 집회는 여실히 증명했다. ‘반미’의 구호는 이른바 일부 불순한 운동권의 고리타분한 용어가 아니라, 그동안 미국에 의해 침탈당한 이 땅의 끊임없이 마르지 않는 샘이다.

지난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짓눌려 여중생이 비참하게 사망한 ‘미선이 효순이 사건’ 이래 요즘처럼 미국의 낯 뜨거운 실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날은 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에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 먼저)를 선전포고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의 악행을 쉬쉬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당당히 미국의 잘못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세, 한반도 평화통일의 새 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첫 걸음이 아닐까.



 

(Visited 35 time, 1 visit today)

관련기사

댓글

소중한 의견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