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의 의혹을 밝혀라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침몰 8주기를 맞아 천안함의 진실공방이 뜨겁다. 주권연구소는 천안함 침몰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 온 신상철 씨 주장과 3월 28일 방영되었던 <추적 60분> 내용, 그 외 천안함의 진실을 위해 노력해 온 여러 주장들을 토대로 천안함의 5가지 의혹을 정리하였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향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1. 교신기록과 항적기록이 없다.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데서 가장 의아한 점은 해상사고의 결정적 증거를 담고 있을 수 있는 교신기록과 항적기록이 전혀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가장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는 교신기록을 은폐한 채 나머지 증거들로 천안함의 침몰원인을 밝힌 꼴이다.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은 2017년 10월에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결정적 증거로 제시된 ‘1번 어뢰’와 천안함 관련 기록을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모두가 비공개 대상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해군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가장 핵심 정보인 △사고 당일인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교신기록 △사고 당일의 천안함 항적기록 △사고 당일 백령도 해병대 초소의 모든 TOD영상 △2010년 3월 26일∼3월 27일 국방부와 해경간 통신기록 △사고 당일 해경501함과 해경253호정 교신기록 △사고당시 해군 상황일지 △ 천안함 이동경로 기록 등을 모두 군사기밀이라며 비공개하였다.

민군합동조사단이 천안함 피격어뢰라며 제시하였던 이른바 ‘1번’어뢰에 대해서는 적성물자라며 자연부식 등의 위험이 있다며 공개를 거부하였다. 또한 국방부는 조사본부가 개인신상에 관한 내용이라며 비공개한 정보는 △천안함 생존자 통신기록 전부 △국군수도병원 천안함 생존자 관련 기록 전부 △천안함 사망자 시신 검안 기록 전부 등을 개인신상에 관한 내용이라며 비공개하였다. △ 생존자의 육성증언 및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공개를 거부하였다.

  1. 이른바 결정적 증거 – 1번 어뢰와 관련한 의혹

특히 국방부가 결정적 증거라며 제시한 이른바 ‘1번 어뢰’와 관련한 의혹이 일파만파 확장되었다.

민군합동조사단은 ‘1번 어뢰’가 북한에서 제조된 모델이라며 그 모델명이 CHD-02D라고 밝혔지만 군이 제시한 어뢰도면이 ‘1번 어뢰’와 달라 다른 것으로 교체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당시 합동조사단은 건져 올린 ‘1번’ 어뢰 추진체와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에서 모두 비정질의 산화 알루미늄이 형성되었다며 이것이 ‘1번’어뢰가 천안함을 격침하였다는 증거라고 제시하였다.

그러나 합동조사단의 주장은 즉시에 반박되었다. 정기영 안동대학교 교수는 어뢰 프로펠러의 흡착물을 조사한 결과 비정질의 산화 알루미늄이 아니라 알루미늄 황산염 수화물에 가깝다고 밝혔다. 산화 알루미늄은 알루미늄(Al)과 산소(O)로 구성되지만 해당 시료에서는 황(S)이 알루미늄(Al)의 25% 비중으로 검출된 것이다. 이승헌 버지니아 주립대 교수도 민군합동조사단이 시료분석의 해석을 잘못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지난 3월 27일에 방영되었던 KBS <추적 60분>에서는 이에 대해 심층적으로 보도하였다. <추적 60분>은 당시 민군합동조사단에서 활동하였던 이근득 국방과학연구소 박사가 “황이 들어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황산물이 더 힘든 결과가 되어 피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녹음 음성을 공개하였다.

게다가 정기영 교수는 흡착된 알루미늄 황산염을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본 결과 폭발에 의해 생긴 입자성 구조가 아니라 침전성장하는 구조로 형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폭발에 의해 일순간에 만들어진 화합물이 아니라 장기적인 침전으로 서서히 형성된 물질이란 것이다. 당시 1번 어뢰의 부품 안쪽에서는 가리비가 자라난 모습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1. 영상자료와 관련한 의혹

백령도 인근 해병대 초소에서 찍었다는 TOD(열상감시장비) 영상도 수상한 점들이 이어졌다.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가 촬영된 TOD 영상을 사고발생 4일 후인 3월 30일에야 1분 20초 분량만 공개하였으며 그로부터 4일 뒤인 4월 2일에 추가 공개하였다. 그런데 이제 더는 없다던 TOD 영상이 4월 7일에 추가로 공개되더니, 5월 30일에도 계속해서 추가로 공개되었다.

당시 TOD 영상을 보면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후 3대의 고속정이 천안함을 지나쳤다. 이 가운데 처음 2대의 고속정은 천안함을 지나쳐갔으며 3번째 고속정이 천안함 인근에서 사고수습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2대의 고속정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추적 60분>은 천안함 구조당시 논란이 되었던 제3지대 부표를 언급하였다. 당시 천안함 함수와 함미가 침몰한 지역과 전혀 관련없는 용트림바위 인근 제3지대에도 부표가 설치되어 미군헬기가 무언가를 실어 나르는 장면이 KBS에 찍혔던 것이다. 당시 미군은 해당 헬기에 대해 인명구호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인근 지역에서 헬기가 인명구조 훈련을 했다는 해명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제3지대 부표는 왜 설치되어 있었던 것일까?

<추적 60분>은 당시 TOD 영상을 분석한 결과 파손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 사이에서 괴물체가 나타났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국방부는 이 괴물체에 대해 천안함 침몰 당시 떨어져 나온 연돌(엔진가스배출기관)이나 구명보트로 추정된다는 답변을 했지만 천안함 연돌은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것이다. TOD 영상 속의 괴물체를 구명보트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커다랗게 보인다. 괴물체는 과연 무엇일까?

<추적 60분>은 이어 천안함 내부의 CCTV 동영상을 입수해 공개하였다.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위원이 국방부와 재판과정에서 국방부로부터 받아낸 천안함 내부 CCTV를 <추적 60분>이 공개한 것이다.

사고 당시 천안함 인근 수역의 파도높이는 2.5m에서 3m 수준으로 항구로 대피하기 직전의 파고라고 하였다. 천안함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파고가 1m 이상만 되어도 책상위의 종이컵이 엎어지는 등 흔들림이 심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국방부가 제출한 CCTV에는 장병들이 너무나 태연하게 운동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으며 물병 속의 물이 잔잔한 상태로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파고가 없는 상황에서 촬영된 영상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더구나 황민구 법영상분석센터 소장은 국방부가 제출한 CCTV 영상은 모니터 화면을 찍은 것이라며 원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였다.

  1. 함체에 존재하는 의혹

천안함 함체에도 의혹은 존재한다. 천안함 침몰 당시 천안함 인양에 참여했던 한 업체대표는 <추적 60분>과의 인터뷰에서 천안함의 어뢰피격설에 대해 “십원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라고 하였다. 그는 천안함을 건져 올릴 때 선저바닥에 뭔가에 긁힌 듯한 스크래치 자국이 선명하였다고 하였으며 당시 영상을 살펴본 결과 실제로 스크래치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추적 60분> 팀이 천안함 기념관에서 천안함을 살펴본 결과 영상에서 나타났던 스크래치가 지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국방부 보고서에는 “선저 상태가 양호하다”고 기록되었다.

전선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도 의혹으로 제기되었다. 1999년에 버블제트 어뢰실험에 적용되었던 호주의 토렌스함은 절단면이 아무런 방향성이 없이 찢겨졌으며 전선이 완전히 녹아내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천안함은 절단면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며 잘려진 모습을 보였고 절단면의 전선들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토렌스함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천안함 인양에 참여했던 한 업체의 부사장은 천안함 재판에 출석하여 ‘천안함의 파괴된 형상이 폭발과 다르다’고 법정에서 증언하기도 하였다. 그는 ‘천안함 인양시 바닥면에서 나타났던 스크래치도 천안함이 가라앉은 후 인양과정에서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주장하였다.

  1. 폭발로 보기 힘든 장병들의 모습

천안함 인양에 참여했던 민간업체 대표 가운데 전중선 씨는 어뢰에 피격될 경우 어뢰폭발에 의해 함선 내부가 심하게 울리기 때문에 내부 생존자들의 고막이 정상적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2010년 유증기 폭발사고를 일으킨 두라3호 수습에 참여하였던 이종인 씨는 당시 폭발로 인해 이리저리 찢긴 시신을 보았다며 폭발이 일어날 경우 생존자와 시신 모두 처참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안함에서는 시신의 사인은 대체로 익사로 판명이 되었으며 생존자들도 대체로 건강한 상태로 구조되었다.

버블제트 어뢰에 맞을 경우 버블의 압력에 의해 상당한 물기둥이 치솟게 되지만 물기둥을 목격한 장병이 없다는 것도 논란이었다. 다만 장병들 가운데 한 수병이 얼굴에 물이 튀었다고 진술했는데 그 부분이 버블제트의 증거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밝혀야

2010년 3월 26일에 침몰한 천안함 사건은 향후 이명박 정권이 5.24 조치를 발표하여 남북관계를 단절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남북관계가 복원되려면 5.24 조치가 해제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천안함 사고에 대한 재조명은 불가피하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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