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속 오늘의 박처원은 누구인가

1987-2017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단 공통의 기억

영화 <1987>의 주인공 대학교 신입생 연희의 물음. “데모하러 가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그렇다.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다. 적어도 촛불혁명으로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 있던 ‘유신의 딸’ 박근혜는 물러났잖은가.

현대사학자 한홍구가 2012년 겨울 박근혜의 당선을 지켜보며 절망적으로 표현한 ‘신유신의 밤’이 민중권력에 의해 전복되는 짜릿함은 실로 엄청났다. 물론 과연 근본적으로 세상이 바뀔 것인가라는 거대한 물음이 아직 남아있다. 유신을 맹렬히 작동시키던 국가보안법(국보법)도 아직 엄존하고 있다.

정치에 무심하던 1987년의 연희는 소중한 사람들이 짓밟히는 상황을 뚫고 마침내 시위의 한복판에 당차게 섰다. 대놓고 민주주의를, 민중의 힘을 깔보며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은폐하고 백남기 농민을 살인물대포로 쏘아죽인 박근혜 정권의 소름끼치는 속살을 알게 된 2017년의 연희(우리)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직면한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광장에 모여들었다. “박근혜는 물러가라”가 지엄하고 웅장한 한줄기의 목소리로 이어져 청와대와 국회를 뒤흔들었다. 그리하여 유신의 딸은 권좌에서 내려왔고 감옥에 들어갔다.

어떻게든 적폐청산을 헐뜯고 업신여기려는 수구적폐세력의 움직임이 여전한 현실이라 예단은 금물. 그럼에도 2017년 촛불혁명은 민중이 스스로의 행동으로 못된 권력을 몰아내 주인공의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음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1987 30주년’인 지난 2017년 연말 개봉한 <1987>은 참 값지다. 학교와 직장을 다람쥐 쳇바퀴 도는 관성에서 벗어나 광장에 나가며, 박근혜 탄핵을 염원하며 혁명의 과정에 동참한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1987>에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6월 항쟁의 물꼬를 튼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군부와 검경, 진상을 알고 강렬한 저항에 나선 학생, 언론, 학생, 소시민, 종교계 등 여러 갈래의 민중이 끝을 보기 위한 싸움에 나선다. 전국의 광장을 가득 메운 민중의 물결은 국보법의 논리가 작동하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대표하는 군부와 검경에 대항하는 민중의 장중한 투쟁선언, 그 자체였다.

2018년 연초, 민중의 물결이 휘몰아친 촛불혁명의 역사적 순간은 1987년 6월 항쟁과 맞닿아 또다시 열렬하게 소환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한동안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이게 나라냐’에서 ‘이게 나라다’를 바라며 삼삼오오 촛불을 들고 목청껏 “박근혜는 퇴진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를 부르짖었던 순간은 흘러간 옛것이 됐을지도 모르겠다고.

실제로 광화문광장을 꽉 채우던 100만을 훌쩍 넘는 촛불파도는 잠잠해졌으니 말이다. 비록 지금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그 흐름은 여전히 뭇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멈춤 없이 흘러가고 있다. 박근혜를 끌어내렸다는 안도감과 새 정부의 국정운영을 바라보는 기대감 속에서. 각종 여론조사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의 70% 이상이 문재인 정부에게 적폐청산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겉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폐청산의 흐름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내심 있었다. 이런 와중에 극장가에 거대한 충격을 던지며 ‘나도 촛불혁명 때 저 사람들과 비슷한 경험을 했지… 눈물 난다 정말 감동이야’를 일깨우는 <1987>의 흥행열풍이 매서워 놀랐다.

사악한 수구적폐세력을 혁파한 민중 스스로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끊임없이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뜻. 내 생각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아무렴. 사람들이 직접민주주의의 유례없는 세계사적 성취라고 일컬어지는 촛불혁명의 벅찬 역사를 잊을 리가 없었다.

앞서 연희가 던진 물음에 당당하게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경험을 우리는 갖췄다.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다만 이제 앞으로가 훨씬 중요하다. 당장 ‘연희의 세상’을 떠올려보자. 1987년 6월 항쟁으로 연희를 둘러싼 세상이 다소 바뀌긴 했다.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는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쳐 떨쳐 일어난 6월 항쟁의 물결에 휩쓸렸다. 6.29선언을 발표하며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은 민중을 기만하는 깜짝 눈속임에 불과했다.

국보법 철폐 없이 적폐청산 없다

31년 전 6.29선언으로 펼쳐진 세상의 본질은 대통령 투표권을 ‘옛다’하고 국민에게 선심 쓰듯 던진, 그들이 주도한 거짓 세상이었다. 몸을 살짝 낮추고 반등의 기회를 노리던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 그리고 대통령이 되려는 야욕에 민주진영을 배신하고 민자당과의 3당합당이라는 치졸한 카드를 빼어든 김영삼에 의해 6월의 목소리는 아랑곳없이 더럽혀졌다. 이후 박정희의 유신을 찬양하는 신군부세력과 그 끄나풀들은 떵떵거렸다. 지금까지도 정부 주요부처와 국회, 지자체에는 끄나풀들의 망령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들은 유신 시절 숱한 민주인사들을 철창과 사형장으로 내몬 국보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마구 휘둘렀다. 국보법 위반혐의가 있다며 ‘종북 빨갱이가 없는 법과 질서가 엄정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뇌까리며 저항하는 민중에게 소송을 걸며 끝없이 짓누르고 기만해왔다.

수구적폐세력은 6.29선언 이후 노태우 당선을 거쳐 살아남았으며 이명박근혜정권을 등에 업고 활짝 기지개를 폈다. 대북심리전이라는 기가 차는 구실을 들이대며 거침없는 여론조작을 벌인 이명박 정부. 그 아래의 국가정보원과 사이버군사령부의 거침없는 지원을 밑돌 삼아 박근혜가 당선됐다. 대통령을 도둑맞은 나라의 국민들은 촛불혁명 이전까지 종북 몰이, 간첩 조작, 정당 해산이라는 재차 소환된 박정희 유신의 겁박에 서로를 의심하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껍데기를 간신히 뒤집어썼을지언정 권력은 국민이 아닌 수구적폐세력들이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었다. 아버지인 박정희가 국보법을 휘두른 만큼 그런 박정희의 일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박근혜도 마찬가지 행보를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지만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간첩조작, 댓글조작, 종북몰이나 일삼던 국가정보원은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은 자체 개혁위원회를 꾸렸다.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한편 ‘국내 파트’를 없애겠다는 자체혁신안(?)을 내놨다. 그런데 이 조치는 매우 부족하다. 1987년, 아니 거스르면 1960년대부터 넘실거린 참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민중의 꿈을 실현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미진한 처사다.

다시 정권이 수구적폐세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떠올려보자. 국정원, 또 국정원의 조작놀음을 뒷받침하며 민중에게 이른바 불순분자, 이적사범이라는 소름끼치는 꼬리표를 달아대는 국보법의 위력은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영화 <1987> 속의 삭막하게 끔찍한 면면이 나온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에 못 이겨 터져 나온 신음과 피고름은 여전히 잊힐 길 없다.

박종철 열사는 신군부를 비판하고 수배 중인 동료의 소재를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서 가혹한 물고문을 당해 숨졌다. 영화 속 대공수사처 치안감 박처원의 눈에 박종철은 ‘매국 빨갱이’였다. 기자들 앞에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아무도 믿지 않을 허무맹랑한 조작된 사인을 언급하면서도 당당했다. 그에게 국민이란 국가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제거해도 괜찮은 소모품에 불과했다.

전두환 군부의 충실한 사냥개이자 극렬 반공주의자였던 박처원은 오히려 박종철의 죽음을 기회로 삼으려 한다. 평소 군부의 눈엣가시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지령을 받아 움직인다는 기획공작을 펼치려 들었다. 박종철의 죽음을 묻고 군부의 정국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공산이었다. 하지만 이한열 열사의 죽음 앞에 민중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고 떨쳐 일어서 박처원과 군부를 ‘후퇴’시켰다.

박근혜 정권 때까지도 제 2, 3의 박처원은 얼마든지 있었다.(지금도 국정원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은밀한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민중총궐기 당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직수살수에 강타당해 차디찬 아스팔트에 나뒹굴어 뇌를 크게 다쳐 혼수상태에 이른 죽음의 과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울러 담당주치의였던 서울대학교의 백선하 교수가 석연찮은 이유로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로 기록했다가 정권교체 이후 ‘외인사’로 수정했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2018년 현재, 지금은 그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딴 세상이 된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혁명의 찬란한 기억을 소생시키고 있는 <1987>을 찾아 관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2천만 명이 넘게 봤으면 좋겠다”는 대한민국 최고지도자의 말. 예전 같으면 정말 상상조차 못했을 일이다. 여기에는 1987년의 과거에서 2018년의 오늘로 이어지는 적폐청산 시동을 강하게 걸겠다는 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음이 분명하다.

뒤끝 없는 적폐청산에 성공하려면 국보법 폐지가 필수적이다. 민주주의를 검열로 옥죄는 국보법 철폐를 밑바탕 삼지 않으면 적폐세력은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고 고개를 치켜드려 할 것이다. 1994년 당시의 문재인 변호사는 국보법 철폐를 드높이며 열성적으로 전국순회 변론에 나섰다. 2017년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국보법 폐지에 원론적으로 동의하며 7조 항목(찬양·고무등)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보법을 내세워 틈만 나면 민중을 종북-빨갱이라는 서슬 퍼런 사슬로 얽매, 불리한 정국을 돌파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초등학생이 통일을 기원하며 태극기와 인공기를 한 데 그려 넣은 그림을 가리켜 ‘종북’이라는 공세를 펼치기까지 했다. 만약 박근혜 정권이 지속됐다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검경과 국정원에 의해 관련수사가 실제로 재현됐을지도 모른다.

1987과 2017을 넘어 새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라도 이제 반드시 국보법은 과거 저 멀리로 청산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1987의 연희와 새 시대의 우리가 함께 손 맞잡고 지향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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