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막가파 식 ‘미국 우선주의’에 시름하는 한국경제

중견 철강업체인 넥스틸은 최근 포항에 위치한 공장 3곳 중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압력 때문이다. 넥스틸은 유정용 강관(원유를 뽑아낼 때 사용)을 생산하는 업체로, 2016년 미국에 22만톤 가량을 수출했다. 생산 물량의 80~90%를 미국에 수출해왔다. 미국 정부는 4월 넥스틸에 기존보다 세 배 가까이 오른 24.92%의 반덤핑 관세를 매겼다. 이로 인해 넥스틸은 올 하반기 들어 수주 실적이 전무하다.

트럼프 발 보호주의 광풍

넥스틸이 미국에 공장을 하나 이전한다고 상황이 나아질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지난 10월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철강 선재(볼트, 너트 등을 만드는데 사용)에 10.0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는 예비 판정 결과를 발표한 바 있는데, 12월 들어 이를 40.8%로 네 배 가까이 올린다고 정정공시 했다. 가장 큰 피해는 포스코가 받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지난 9월 미국 인디애나주에 선재 가공센터를 여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보호주의 광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4월 한국을 비롯한 외국산 철강제품 수입에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제품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폭탄과 함께 수입물량까지 제한하는 초강력 무역제재 조치다. 냉전 시대였던 지난 1962년 제정된 이후 사실상 사문화돼 적용되지 않던 이 조항을 트럼프 행정부가 55년 만에 꺼내 든 것이다. 정부는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철강제품의 (대미) 수출목표를 낮춰 잡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단 철강뿐만이 아니다. 트럼프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만지작거릴 당시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도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해 보호받을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밝히는 등 한국의 주력 수출품 역시 언제든 무역보복 조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반도체 업체에 칼끝을 들이대고 있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11월 28일 SK하이닉스가 수출하는 서버용 D램의 일부 부품이 자국 기업인 넷리스트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했는지를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미국 반도체 관련 업체인 테세라는 삼성전자의 웨이퍼레벨패키징(WLP) 기술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에 제소했고 ITC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미 ITC는 관세법 337조에 따라 자국 기업의 지적재산권(IP)을 침해한 해외 제품에 대해 수입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또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11월 세탁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권고안을 통해 외국산 가정용 대형 세탁기 가운데 세관 통과 기준 120만대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50%의 관세를 물리는 등의 조치를 발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2016년 우리나라와 동남아 국가 등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 가정용 대형 세탁기는 250만대를 상회한다. 미 무역위의 권고안이 시행될 경우, 세탁기 대미 수출 가운데 130만대 이상이 50%의 관세를 내게 된다.

이와 같은 미국의 통상압력은 한미FTA 개정 협상과 맞물려 더욱 증대될 전망이다. 일례로 11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방미 일행단에 따르면, 미국은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자동차에 미국산 부품을 더 많이 사용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23건의 대한국 수입규제(확정기준)를 했던 미국은 올해 총 31건의 규제를 하고 있다. 한국은 인도와 함께 미국의 수입규제 1위 국가가 됐다. 12월 기준 수입규제와 관련된 조사 건수가 한국은 8건, 인도가 3건인 것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단독 1위에 오를 전망이다.

노골적 무기 강매와 군사비용 떠넘기기

통상압력과 함께 미국이 ‘금전적 갈취’에 열을 올리고 있는 부문은 군사·무기분야다. 군사·무기부분은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히’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세력들이 있기에 더욱 심각하다.

지난 11월 한미정상회담 후 트럼프는 “한국이 미국의 군사 장비를 구매함으로써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트럼프는 “한국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주문할 것”이라며 “이 승인된 것도 있다”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최첨단 군사정찰자산 획득 및 개발 협의를 즉시 개시할 것”이라고 말해 트럼프의 말이 사실임을 시사했다.

한미정상회담 후 언론 등에서는 미국산 무기구입을 기정사실로 예상하고 있다.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기에는 지상감시 특수정찰기인 조인트스타스, F-35A 스텔스기 20대, SM-3 대공미사일, P-8A 해상초계기, 무인공격기 ‘그레이 이글(MQ-1C)’ 또는 무인정찰기 RQ-7 섀도 등이다.

조인트스타스는 대당 약 3,600억원으로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4대(1조4,000억여원)가 필요하다고 한다. F-35A 20대를 추가 구매하면 3조2,000억원이 넘게 들 것으로 추산된다. SM-3 미사일은 1발당 150억원에 달하며 6,000억원어치는 구매해야 이지스함 3척에 우선 배치가 가능하다. 해상초계기 20여대를 구매하는 사업 규모는 2조6,000억원대에 이른다. 무인공격기 ‘그레이 이글’은 60억∼80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거론되는 미국산 무기 구매액을 대충 합산해 봐도 7조8,000억원이 넘는다(연합뉴스, 2017.11.07.).

2018년에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본격화 된다. 한미는 2014년 제9차 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통해 한국 정부가 9200억원의 분담금을 부담하기로 하고, 협정 적용기간인 2018년까지 전전년도 소비자 물가상승분을 적용해 매년 지원분을 인상하도록 했다. 2017년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은 9507억원이었다.

트럼프는 대선 때부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주장해 왔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 인적비용의 50%가량을 부담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50%라고? 100% 부담은 왜 안 되느냐”고 발언하기도 했다. 11월 한미정삼회담 뒤 발표한 공동언론발표문에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관련 공평한 비용 분담이 바람직함을 인식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의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가 거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트럼프가 강탈하지 않아도 너무나 팍팍한 한국사회

문제는 트럼프의 통상압력, 군사비 떠넘기기를 받아주다가는 한국사회가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 도어 수리 도중 사망한 김 군, 제주도의 한 생수공장에서 현장 실습 도중 사망한 이 군, 서울 지하철 1호선 온수역의 선로에서 작업 중이던 30대 일용직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숨진 사건 등 최근 들려오는 암울한 소식들은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식적인 체감 청년실업률은 20%대 넘었다(11월 21.4%). 노인빈곤율, 자살율 1위는 이제 한국하면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됐다. 통계상의 노인 상대적 빈곤율은 2016년 44.5%를 기록했다. 가계부채는 1400조원을 돌파했다.

한편에서는 한국경제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올해 한국경제는 3%대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등 몇몇 품목과 소수 재벌 대기업에 의존한 성장에 불과하다. 몇몇 업종만 타격을 받아도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8월까지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 증가율은 0.3%다.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가계 전체의 실질소득은 3분기에 1년 전보다 0.2% 감소하며, 8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12월 21일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의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니계수, 소득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분배지표들이 모두 악화됐다.

한국경제는 현재 제 한 몸 추스르기 급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막가파식 통상압력과 군사비용 떠넘기기는 한국경제에 또 다른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특히 그동안 한국경제 성장을 끌어왔던 것이 소수 품목과 수출 대기업이라는 점에서 트럼프의 통상압력 등은 더욱 심각하다 할 수 있다. 당연히 자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품목이 통상압력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물론 정부가 경제 정책을 잘 짜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트럼프의 막가파식 통상압력과 군사비용 떠넘기기에 저항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백남주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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