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사할린 한인 동포 이야기

“정부가 바뀌면 다를까하고 기대했는데 조금의 변화도 없다.”
-2017년 12월 9일, 신윤순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잔류유족회’ 대표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 신윤순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잔류유족회 대표 신윤순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잔류유족회 대표가 정부를 성토하며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남긴 글.ⓒ 박명훈

1994년, 한국과 일본 두 정부는 사할린 잔류 한인(동포)의 지원을 둘러싸고 구체적인 합의를 벌인다. 합의에 따라 한인 1세대는 ‘1945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로서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에 이주하여 계속 거주중인 자’로 규정됐다. 시간이 지나 2017년 현재, 사할린 동포 1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를 알기 위해선 우선 관심 밖으로 멀어진 동포 1세를 둘러싼 지금까지의 논의를 들춰봐야 한다.

사할린 동포 1세란 어떤 사람들인가. 일제 패망 당시 사할린에는 대략 4만3000명 이상의 조선인들이 거주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다수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에서 일제의 조선인 노동력 강제동원(여기에는 돈을 주겠다며 조선인들의 사할린 이주에 앞장선 조선총독부를 필두로 한 관(官) 알선도 포함된다)에 따라 사할린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다.

여기에 1945년 8월 15일 이후 소련 치하에 놓인 사할린으로 유입된 이북(북한) 출신 노동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북한에서 새롭게 유입된 사람들까지 더해 동포 1세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현재로선 사할린 동포 1세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귀국을 희망하는 이남 지역 출신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외교부가 발간한 ‘재외동포현황 2017’에 따르면 사할린 거주 동포 수는 2만6491명이다. 3만 명이 넘었던 인구수는 매년 뚜렷하게 줄어드는 추이를 보인다. 이 가운데 생존해 있는 1세대는 2014년 기준 700여명 남짓. 지금까지 2015년 12월 말 기준 동포 4368명이 고국(한국)에서 여생을 보내는 영주귀국을 택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의 생활이 불편해 사할린으로 다시 돌아간 동포, 사망자들을 제외하면 같은 시기 기준 동포 3035명이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우리네 동포들을 가리켜 ’고려인‘이라고 통칭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할린 동포 또한 고려인으로 불러야 하겠지만 사정은 복잡하다. 사할린 동포의 이주배경이 새롭게 삶의 터전을 꾸리고자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이주한(이들 중 상당수는 1937년부터 10여 년 간 실시된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터전을 옮긴다) 다른 고려인들과는 달라서다.

사할린 동포의 배경에는 반강제적으로 식민지 조선인을 사할린으로 데려와 패망 이후 버려두고 떠난 일제의 책임이 지대하다. 일제의 패망 이후 동포사회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솟구쳤으나 금세 좌절감으로 바뀌었다. 냉전과 한국전쟁이 곧 이어졌고 소련이 사할린 전역을 차지한 상황에서 한국과의 연락은 가로막혀 있었다.

정부는 사할린 동포를 어떻게 ‘방치’ 해 왔나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 닥치는 러시아연방의 사할린(일본명 카라후토(樺太))섬은 석탄 등의 자원이 풍부한 천혜의 보고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사할린섬 북위 50도 이남의 남사할린(일본명 미나미카라후토(南樺太))을 차지한 일제는 손쉽게 부려먹어도 ‘큰 탈’이 없는 식민지 조선인의 노동력을 강제 동원해 석탄을 채굴케 했다.

1944년, 태평양전쟁 전선이 동남아시아로 남하하면서 수세에 몰린 일제는 남사할린의 조선인 탄부들을 한참 멀리 떨어진 일본열도의 큐슈(九州) 등으로 다시 강제 동원했다. 이른바 ‘이중징용’이다. 아버지, 오빠가 끌려가고 어머니와 남매들만이 남겨진 조선인 가정의 상처는 결코 아물 수 없다. 당시의 기억이 비수가 돼 지금껏 자손들의 가슴에 아프게 박혀 있다.

공개된 당시 일본 내각 등의 문건내용을 종합하면 일제는 반강제로 동원한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에게 지급할 돈(우편 저금)은 우선 관청이 고이 맡고 있다가 나중에 지급하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련군과 러시아계 주민들이 일제히 남쪽으로 밀려들어오는 상황에서 일본인 38만 명만 홋카이도 북부 연안과 맞닿은 코르사코프 항구를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이후 88 서울 올림픽 개최와 구소련의 개방움직임으로 냉전종결이 무르익던 지난 1989년, 한일 양국정부는 대한·일본적십자사의 중재로 ‘사할린거주 한국인지원 공동사업체(이하, 사할린사업체)’를 설치하기로 합의한다. 침략전쟁에 돌입하며 노동력 확보에 나선 일제의 정책에 따라 사할린으로 옮겨진 사할린 잔류 동포 1세를 지원하기 위한 본격적인 첫 발걸음이었다.

1994년 집권한 사회당 소속 무라야마 토미이치(村山富市) 일본 총리가 이끌던 무라야마 내각의 공식사죄표명은 오늘날 망각됐다. 무라야마 내각이 물러나고 자민당 정권이 들어선 1996년을 기점으로 일본 정부의 태도는 바뀌었다. 한국 정부는 사할린 동포 지원에 제한을 둬선 안 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사할린 동포 1세에 한해 인도주의적 지원을 펼치자는 일본 측의 요구를 수용했다.

실제로 2017년 기준 일본 외무성은 해당 사업에 대해 “(사할린 한인의) 대부분은 귀환의 기회가 없이 장기간 사할린에서 어쩔 수 없이 잔류했다. 일본정부로서는 이러한 역사적 경위 및 인도적 입장에서 한일공동으로 한국으로의 일시귀국과 영주귀국 등을 지원하기 위해”라고 적시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합의로 설치된 사할린사업체는 강제동원의 1차적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 한국 정부의 부지 확보 및 복지 뒷받침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 정부는 세계적 인도주의 단체로 명망 높은 적십자사에 영주귀국, 일시 방문, 귀국자 역방문 등 관련 사업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사할린 동포들을 선별했다.

사할린 동포의 지원을 위한 한일 양국의 공동대표단이 출범했다는 점은 언뜻 ‘성과’로 비춰진다. 그렇다면 실체는 어떨까? 일제강점으로 고통을 겪은 위안부 피해자의 사례와 비교해보자. 지난 2015년 박근혜 정권 당시 ‘위안부 합의’의 결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도적 지원을 총괄하는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됐다. 화해재단은 일본 측의 재정 지원, 한국 측의 복지 뒷받침으로 운영된다. 사할린사업체와 화해재단의 운영방식이 무척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측이 준비한 부지에 일본 측의 자금이 투입돼 사할린동포 전용아파트, 요양원 등이 설립됐다. 이처럼 화해 재단과 사할린사업체의 운영구조는 놀랍도록 닮아있다. 한국 정부가 일제강점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최소화 하고자 일본 정부의 ‘인도적 지원’이란 논리를 수용했다는 혹독한 평가가 뒤따른다.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한국 정부가 일본의 재정지원에만 기대며 ‘뒷짐’을 져 왔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에 대해 김정영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관장은 “(일본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서) 재정이 부족해 화장지, 기저귀 등 생필품도 어르신들의 기초연금으로 구입하게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2016년을 마지막으로 1989년부터 이어진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면서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사업의 재정 규모는 크게 축소됐다. 일본 정부의 지원액은 2013년 기준 총 800억에 이른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6년도 영주귀국 사할린지원 사업안내’ 문건에는 “15년 말로 한일 공동 영주귀국사업은 종료하며 16년부터 우리 정부 단독으로 매년 20명 이내 소규모로 실시(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의 방침은 예산 부족을 근거로 규모를 최소화하는 선별지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에 적극적인 사할린 특별법 제정을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중대한 공개발언을 했다. “사할린 강제징용으로 고통 받은 한인 1세분들과 그 후손들의 남은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지난 역사에서 국가가 지켜드리지 못한 무거운 빚을 이제라도 갚아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며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의 말마따나 최선의 노력은 펼쳐지고 있는가. 오히려 사할린 동포에 대한 지원은 예산이 큰 폭으로 삭감되는 등 전반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왜 대통령의 발언에도 이런 일이 이어지는 걸까. 무릇 정책이란 제도적으로 튼튼하게 뒷받침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하지만 사할린 동포를 지원하는 정책은 중구난방에 낙제점이란 평가가 잇따른다.

우선 사할린 동포를 아우르는 전국적인 통일조직이 없다. 지난 2015년 말 기준 전국 24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 어르신들의 단합된 목소리를 정부에 전할 수 없는 상황인 것. 여기에 사할린 동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외교부와 보건복지부 등으로 나뉘어 있다. 창구가 하나로 일원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단 비판이 터져 나온다.

사할린 동포의 지원책을 논의하는 국무총리실 산하의 재외동포위원회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촌동포연대(KIN) 등에서 사할린 동포를 일관되게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 제정과 독립된 권한을 지닌 강력한 사할린동포지원위원회 설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감감무소식. 지난 2006년부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과거 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지원책 강화 및 특별법 제정을 담은 법안이 발의된 바 있으나 계류 또는 폐기 상태다.

이와 관련 최상구 지구촌동포연대 사무국장은 12월 14일 기자와의 질의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재외동포정책위원회는 1년에 한번 열린다”라며 “상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최 국장은 그러면서 “영주귀국 대상을 처음부터 규제(영주귀국사업 대상을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에서 태어나거나 구조한 동포 1세대로 한정)해온 점을 볼 때 한국정부도 영주귀국대상을 넓히는 걸 그리 반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라고 전했다.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 개선책을 주도해야 한다. 고령화된 동포 1세대 어르신은 차례차례 세상을 뜨고 있다. 2~4세에 대한 지원논의는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 문 대통령이 “국가가 빚을 졌다”고 말했듯 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유해발굴 등도 물론 중요하지만 살아있는 동포들의 사무친 목소리에 훨씬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도적 재정지원을 빌미로 강제동원을 물타기 하려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재차 환기하는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외교부 등 관계에서 제기돼 온 “사할린 동포에 대한 지원은 형평성에 어긋나니 곤란하다”는 적폐인식도 마땅히 청산해야 한다. 그야말로 정부가 시도를 해 보기도 전에 꼬리를 내리고 책임을 방기하는 꼬락서니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해야 할 정부 부처가 앞서 ‘곤란하다’를 주장하는 꼴사나움을 언제까지 감내해야 할까. 위안부 피해자들과 달리 일제와 한국정부에게 방치돼 온 사할린 동포들의 역사는 우리사회에 충분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할린 동포를 향한 국민적 차원의 성원이 빗발치기 위한 토양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작해야 한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 활짝 흐드러진 사회가 바로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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