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공존체제]히틀러의 핵개발을 막아라

#3 작전명 거너사이드

“분홍 코끼리 세 마리.”

눈 쌓인 숲 속에서 한 남자가 스키를 타고 걸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오늘 아침에 뭘 봤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이 남자는 영국군 특수작전수행대(SOE)에 이 사실을 전했고 SOE는 곧바로 다음 작전에 돌입했다. 이 남자의 이름은 토르스테인. 노르웨이 베모르크에 있는 뫼스바튼 댐 기술자의 동생이다. 이들은 나치 독일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비밀 작전을 수행 중이었다.

연합국 측은 추축국 측이 뫼스바튼 댐의 수력발전소에서 비료 생산의 부산물로 나온 중수(重水)를 독일로 빼돌려 핵개발에 사용할 계획임을 알아차렸다. 영국군은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와 손을 잡고 중수의 독일 반입을 막기 위한 그라우스 작전(Operation Grouse)을 가동했다.

베모르크 수력발전소 1935년도 모습(위)과 최근 모습(아래)

물론 SOE 대원들도,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들도 중수가 왜 핵개발에 필요한지는 알지 못했다.

“다시 설명을 해 주시죠. 노르웨이의 댐을 폭파시키라고요?”

SOE 대장 찰스 함브로 경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과학자문위원에게 물어봤다.

“정확히는 댐 전체를 폭파하는 게 아니라 댐에 있는 중수공장을 폭파하는 겁니다.”

“중수란 게 대체 뭐요?”

“중수란 중수소와 산소가 결합한 물입니다. 물을 화학기호로 쓰면 H2O죠?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결합하면 물 분자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보통 수소의 원자핵은 양성자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끔 양성자에 중성자가 붙어 있는 수소가 있습니다. 이를 보통 수소보다 두 배 무겁다고 해서 중수소라 부릅니다. 중수소로 된 물을 중수라고 합니다. “

“그런데 그 무거운 물과 독일군의 신무기 개발이 무슨 관계라는 거요?”

과학자문위원은 SOE 대장이 참 꼼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정확히 자신이 할 일만 파악하고 끝내는데 이 사람은 과학지식을 일일이 물어보고 있다. 최신 과학에 관심이 많거나, 작전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을 정확하게 알아두려는 의도겠지. 특수부대 군인이 과학에 관심이 많지는 않을 테고, 그러면 자기 임무에 대한 책임감이 무척 강한 사람이겠군.

“핵무기를 만들려면 우라늄-235가 필요합니다. 우라늄-235라는 건 원자핵의 질량수, 즉 양성자와 중성자가 총 235개 있는 우라늄을 말합니다. 우라늄 원자핵의 양성자는 92개로 정해져 있으니 중성자가 143개라는 소리죠. 이 우라늄-235가 중성자에 맞으면 쪼개지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내뿜습니다. 그런데 자연에는 우라늄-235가 희귀합니다. 우라늄 자체도 흔치 않은데 전체 우라늄의 0.7%만 우라늄-235입니다. 대부분의 우라늄은 중성자가 146개인 우라늄-238인데 이걸로는 핵분열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핵폭탄을 만들려면 우라늄 가운데서도 우라늄-235만 모아야 합니다. 이걸 우라늄 농축이라고 하는데 돈이 많이 듭니다.”

여기까지 설명하고서 과학자문위원은 SOE 대장의 눈치를 살폈다. 이쯤 되면 설명을 중단시킬 텐데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진지하게 듣고 있다. 쳇, 끝까지 설명해야 하겠군.

“우리 연합군에 비해 자금이 쪼들리던 나치 독일은 우라늄 농축 대신 플루토늄 추출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우라늄-238에 중성자를 쏘면 우라늄-239가 됐다가 며칠 후 중성자 하나가 양성자로 변하면서 플루토늄-239가 됩니다. 이 플루토늄이 우라늄-235처럼 핵분열이 가능한 물질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중성자의 에너지를 줄여 느리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감속재로 쓸 수 있는 게 흑연과 중수입니다. 그런데 독일이 확보한 흑연은 순도가 낮아 감속재로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흑연 대신 ‘중수’로 중성자를 컨트롤한다는 거구만.”

잠자코 듣고 있던 SOE 대장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과학자문위원은 깜짝 놀랐다. 분명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으론 딴 생각을 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자신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중수만 뺏으면 독일군이 신무기를 개발할 수 없다 이거로구만. 좋소, 설명하느라 수고 많았소. 우리 부대원들에게 자기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자세히 설명해줘야 일을 제대로 하거든.”

말을 마친 찰스 함브로 경이 일어나 과학자문위원과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1942년 10월 19일 SOE에서 훈련을 받은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들이 비행기를 타고 베모르크의 수력발전소로 향했다. 그라우스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들은 일단 공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린 후 스키를 타고 15일을 이동했다. 현지에는 수력발전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노르웨이 기술자 에이나르 스킨날랜드와 그의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영국군에 포섭되어 훈련까지 받은 상태였다.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들이 안전하게 도착한 걸 확인한 SOE는 2차로 프레시맨(Operation Freshman) 작전을 시작했다. 이 작전은 글라이더 2대에 영국군 공수사단 병사들을 태워 보내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들과 만나 공장을 폭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상악화로 글라이더는 추락했고 여러 병사들이 즉사했다. 살아남은 병사들도 “영국군 코만도 대원은 체포 즉시 사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모두 처형됐다.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들은 눈 쌓인 숲 속에 은신하며 살아남아야 했다. 처음엔 이끼를 뜯어먹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날이 더 추워지자 순록을 잡아먹었다.

프레시맨 작전은 실패했지만 영국군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듬해 2월 16일 거너사이드 작전(Operation Gunnerside)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영국군 대신 노르웨이 레지스탕스를 투입했다. 이들은 순록 육회에 질려가던 대원들과 무사히 만나 2월 27일 밤, 중수공장에 침입해 폭탄을 설치하고 빠져나왔다. 폭탄이 터지면서 공장 설비들은 물론 그간 생산된 중수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중수 확보에 실패한 독일은 결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핵폭탄 개발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독일이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면 2차 세계대전은 전혀 다른 결과로 끝났을까?


한반도 핵문제의 시원과 역사, 그리고 새로운 단계를 그린 팩션 [핵공존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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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트리니티 테스트(Trinity Test)
아인슈타인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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