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조국분단 ⑤‘동포’ 자이니치의 오늘과 앞날

조국을 마음에 새기다

지난 2016년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된 위안부 피해자들의 참상을 알린 영화 <귀향>은 한국에서 큰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349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정민’으로 등장한 강하나는 자이니치 4세다. 오는 9월 14일 <귀향> 촬영에서 못 다한 이야기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더한 후속편인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첫번째 <귀향>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져달라는 영화라면 2번째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이 영화를 잊지 말아달라, 계속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해 도와달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강하나-

“‘귀향’ 349만 흥행, 상상도 못했다..놀랍고 감사해”(스타뉴스_2017.09.07.) 중에서.

우리나이로 18살. 강하나는 오사카 조선고급학교(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귀향> 개봉 이후 인터넷 상에 주소. 다니는 학교 등이 공개됐다. 일본 우익들의 위협을 느낀 강하나의 가족은 신변 보호를 위해 경찰과 변호사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우익의 위협을 사전에 짐작했음에도 강하나와 그녀의 어머니 김민수는 영화에 직접 출연해 위안소를 운영한 일제의 작태를 전달하는데 힘썼다. 일본에 터전을 꾸린 자이니치의 입장에서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던 것. 그렇다면 두 모녀를 영화로 이끈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귀향>은 14년 동안 7만여 명의 크라우드 펀딩(주로 소셜미디어(SMS) 홍보를 바탕으로 군중에게 자발적인 재정 후원을 요청하는 방식)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했다. 조정래 감독은 우리말과 일본어에 능숙한 강하나 등 자이니치 배우들에 초점을 맞췄고 한국에서 불붙은 영화 제작의 물결은 바다 건너 일본의 동포사회로까지 퍼져나갔다. 따라서 <귀향>은 한국의 시민들과 자이니치의 ‘합작영화’라는 정체성을 지닌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체험한 자이니치 1세, 부모님으로부터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2세. 그들과 비교하면 일제강점의 기억이 없고 일본문화와 밀접한 3세와 4세는 상대적으로 분단된 조국을 그리는 마음이 덜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 지적은 타당한 것일까.

강하나와 마찬가지로 4세인 추성훈의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추성훈은 2001년 일본국적을 취득했다. 어린 시절 일본인 친구들 앞에서 본명을 숨기기 위해 사용했던 ‘통명’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勲)를 이름으로 삼았다. 1998년 한국으로 건너간 추성훈은 조국에서 국가대표 선발을 노렸으나 텃새와 파벌싸움에 밀려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귀화를 전제로 한 국가대표 제안이 들어왔고 추성훈은 그 길을 선택했다. 유도 국가대표의 꿈을 끝내 저버릴 수 없었던 그에게 귀화는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다. 국제무대에 일본 국가대표로 나서 승리를 거둔 추성훈을 가리켜 한국 언론은 ‘조국을 메쳤다’면서 비판했다. 추성훈이 귀화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

본격적으로 추성훈의 사연이 알려진 계기는 2008년 인기예능 <무릎팍도사> 출연이었다. 그 후 추성훈은 2009년에 일본의 톱모델 야노 시호(矢野志保)와 결혼, 태어난 딸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딸이 자이니치의 뿌리를 잊지 않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한국과 일본을 오갈 때 붉은 색의 일본여권을 지참하고 일본인 아키야마 요시히로로서 입국 심사를 받게 된 추성훈. 조상의 성인 추(秋)씨를 버리는 것이 무척 마음이 아팠노라고 그는 고백한다.

추성훈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딸 사랑과 출연한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추성훈 가족의 삶을 바꿨다. 사랑과 부인 야노 시호가 우리말을 배우며 자주 한국을 찾는 모습이 전파를 탔고 한국의 대중은 열광을 보냈다. 귀화를 선택한 추성훈의 심정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추성훈을 지탱하고 있다. 추성훈은 비록 귀화했지만 자신은 추성훈이라는 이름이 가장 듣기 좋은 ‘한국사람’임을 밝혔다.

“보통 아키야마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잖아요. 일본 사람이 되었는데 없어진 이름을 불러주는 게 진짜 행복하고요. 한국에 가면 솔직히 눈물도 나고 그런 거에요 저는.” -추성훈-

2009년 8월 15일 광복절 특집으로 편성된 KBS 방송 <자이니치, 고민하는 영혼> 중에서.

강하나와 추성훈의 국적은 다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스스로 정체성을 뚜렷이 밝히며 활동을 펼치는 자이니치라는 점에서 같다. 세월이 지날수록 자이니치로서의 기억이 희석되어가겠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본인으로 귀화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자이니치의 마음만큼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제 물음을 던져보자. 우리(한국인) 대다수는 이처럼 힘든 상황에도 민족성을 견지하려는 동포를 그동안 어떻게 마주해 왔을까? 어쩌면 우리는 깊은 성찰 없이 그저 방송, 다큐멘터리 영화 등에서 때때로 소개되는 자이니치의 단편적인 모습을 전부라고 넘겨왔던 것은 아닐까.

자이니치가 진정 우리의 동포라면

동포가 차별받는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역사학자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의 갑갑함은 풀렸을까?

“모국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해외동포 문제 특히 재일동포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모국이 해방과 함께 분단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후 60주년이 되도록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에 해외동포들, 특히 재일동포들이 그들이 사는 사회로부터 정당한 외국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강만길-

<우토로 강제 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6쪽에서.

강만길의 발언 이후 어느덧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해방 70주년을 통과했건만 자이니치는 여전히 일본사회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뿐만 아니라 자이니치를 바라보는 한국정부의 시선도 무척이나 냉랭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결책은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72주년 행사에서 경축사를 통해 자이니치의 조건 없는 입국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직접 자이니치의 자유왕래를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요점을 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 -문재인-

2017년 8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72주년 행사의 경축사에서

주일한국영사관이 한국으로 입국 신청을 한 조선적 자이니치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를 꼬치꼬치 추궁하며 한국 귀화를 종용하는 상황이 이번 기회에 전환될 수 있을까? 분명 국적을 불문하겠다는 대통령의 직접 발언으로 정상화의 계기는 마련됐지만 지금은 단지 그 뿐이다. 조선적 자이니치 신청자의 입국 신청을 모두 허용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로 돌아가려면 넘어야 할 난관이 많다.

당장 페이스북 등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서는 영사관 소속 외교관이 자이니치의 입국을 선별케 하는 현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빗발친다. 여러 반응들을 살펴보니 현장에 있는 공무원들이 자이니치에게 일삼은 폭언과 모욕이 관습화됐다는 우려가 높았다. 대통령이 직접 왕래 정상화 의지를 드러냈음에도 ‘아직 두고 봐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까닭이다.

외교관이 정부의 방침을 수행하는 공무원인 만큼 이명박·˙박근혜 정부로부터 ‘조선적 동포 입국 불허’라는 입김을 강하게 받은 측면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러 영사관을 찾은 동포들을 향한 수모를 접하면 ‘과연 그것 뿐 이었을까’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은 8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생각보다 재일동포들이 입국과정에서 느끼는 인권침해는 훨씬 심각하다”라며 “작정하고 늦게 발급하기부터 본인 뿐 아니라 친척, 가족들 신상조사, 한국적으로 옮기지 않는 이유서, 사생활 침해, 이유를 밝히지 않는 발급거부 등 요즘 한국의 관공서에서 벌어진다면 당장 사건이 될만한 이들이 버젓이 외교공관에서 같은 동포들(한국적, 조선적을 불문하고)에게 벌어지고 있다”라고 썼다.

김명준 감독은 그러면서 “더욱 많은 사례를 수집하여, 이런 인권침해, 모독, 횡포가 단순히 연사관 개인의 성향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이며 외교부의 동포를 대하는 태도, 관점의 문제, 그리고 대한민국 외교부의 인권에 대한 몰이해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려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 페이스북 등에서 여러모로 제기된 반응을 종합하면 외교관들은 자이니치를 괜히 영사관을 방문해 자신들을 들볶는 귀찮은 ‘파리 떼’로 여겼다는 느낌이 든다. 아울러 현 상황에서 자이니치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또 어떠할지에 대한 걱정도 피어오르게 된다.

연재를 마치며

자이니치는 아직 ‘동포로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자이니치의 삶은 특정한 시기, 이를테면 ‘조선학교 수업료 무상화 소송’ 판결이 나올 때와 방송에서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때만 반짝 조명되고 자취를 감춘다.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그들이 우리와 조상과 고향이 같은 사람들임을 알고는 있지만 거기에서 더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카나가와(神奈川)대학 교수이자 자이니치사회의 흐름을 집대성한 역작 <자이니치의 정신사>를 펴낸 자이니치 2세 윤건차의 일침을 소개한다. 자이니치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이 하루 속히 개선되기를,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하며 ‘일본 속 조국분단’ 연재를 마무리 하려 한다.

“우리의 과제는 남북통일, 즉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다. 남북분단의 기본원인은 일본군의 한반도 주둔에서 찾을 수 있다. 연합군이 일본군을 무장해제 하러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분단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의 첫 과업은 통일이다.”              -윤건차-

“日本, 천황제 폐지해야 진정한 민주화 된다”(문화일보_2014.11.14.)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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